[시론/장제국]
도쿄에서 만난 강한 일본인
“아빠, 무서워. 땅이 심하게 흔들려. 지진이 났어.” 수영대회에 출전한다며 아침에 들뜬 기분으로 집을 나서 일본 도쿄로 날아간 초등학교 5학년 딸이 건 전화였다. 그 말이 끝나자 전화가 끊어졌다. 즉시 전화를 다시 했으나 불통이었다. TV를 켜니 지진해일(쓰나미)이 도시를 덮치는 장면이 나왔다. 혼비백산의 순간이었다. 급히 여권을 찾아 들고 김포공항으로 갔다.
대재앙에도 평상심 잃지않는 그들
공항은 앞선 항공편의 결항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도쿄행 비행기표를 구했으나 곧 결항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하늘이 노래졌다. 전화를 붙잡고 100번 넘게 연결을 시도했으나 불통의 연속이었다. 공포에 떨고 있을 어린 딸을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도쿄에 언제 큰 지진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황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늘이 도운 건지, 결항된다던 비행기가 떠난다는 기적 같은 방송이 흘러나왔다. 낮 12시 5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자 여진이 발생했다. 공항 천장에 매달린 장식물이 심하게 흔들렸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 로비로 나오자 지상 교통편이 마비된 상태여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도 도서관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차분하고 조용해 인상적이었다. 터미널을 벗어나 택시 승강장으로 뛰어갔다. 택시도 없는데 줄은 만리장성 같았다. 간혹 오는 택시에 먼저 타려고 새치기하는 사람도 없었고, 손님에게 웃돈을 요구하는 택시운전사도 없었다. 오히려 노인에게 간만에 오는 택시를 양보하기도 했다.
필자가 연락해 놓은 지인이 공항에 도착한 것은 두 시간 후였다. 딸의 숙소까지 이동하는 몇 시간 동안 극심한 체증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경적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사람들은 대중교통이 없어 걸어서 귀가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교통신호를 지키는 모습에 ‘꼭 저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번 지진은 필자에게 두 번째 경험이다. 1995년 고베에서 큰 지진이 났을 때 도쿄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새벽잠을 깨울 정도로 도쿄도 엄청나게 흔들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무려 65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재앙이었지만, 희생자 가족들이 슬픔을 참으며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극한 상황에서도 그토록 침착하고 냉정할 수 있을까?
다음 날 오전 5시 딸의 숙소에 도착해 ‘극적’인 상봉을 했다. 딸은 필자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내 날이 밝아 왔다. 거리에는 평소처럼 쓰레기를 수거하는 모습이 보였다. 귀국을 위해 서둘러 공항으로 떠나는 우리 부녀에게 ‘오하요 고자이마스(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그들을 보며 당신들이야말로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가까운 이웃’ 한국이 응원합니다
이번 지진은 유례를 찾기 힘든 대재앙이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겪게 되면, 비로소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기력한 존재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한들 도리가 있을까. 엄청난 피해를 본 이웃나라에 대해 안타까움과 깊은 인류애를 느끼는 것은 우리도 힘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이 하루빨리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를 간절히 바란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충격에 빠져 있는 일본인들에게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의 위로를 보낸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고 의연하게 대응하고 있는 일본 국민의 강건한 국민성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이웃나라 한국인의 진심 어린 응원이 조금이라도 힘이 되면 좋겠다.
장제국 동서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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