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게시판

일어나라, 일본이여!… 위기 딛고 꿋꿋하게

namsarang 2011. 3. 15. 23:33

[특별 기고]

東日本 대지진, 일본의 침착한 대처를 보며

 

일어나라, 일본이여!… 위기 딛고 꿋꿋하게

 

TV 화면에 나오는 재해의 광경들과 ‘리히터 규모 9.0’이라는 숫자는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 이번 지진으로 지구 자전축이 10cm가량 이동했다는 얘기도 한가한 얘기처럼 들렸다. 눈으로 들어오는 끔찍한 모습들이 마음을 압도해서, 추상적 생각들은 머리 한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대지가 흔들리고, 그 위에 선 인공물들은 모두 흔들리고 무너졌다. 지진해일의 물살이 도시들을 삼키는데, 폐허 한쪽에선 거대한 불길과 연기 기둥들이 하늘로 솟구쳤다. 원자력발전소들이 폭발하고 노심의 부분 용융이 일어났다. 대기를 타고 방사성 물질들이 퍼져서, 많은 주민이 급히 탈출했다. 이번 일본 지진에선 흙, 물, 불, 공기의 네 원소가 모두 가담한 형국이 됐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 나는 새삼 반추했다. 왜 사람들이 천재지변을 ‘신의 행위(Act of God)’라 불렀는지. 인류 문명이 워낙 발전한 터라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여린 존재인지, 그리고 인류 문명이 아직 얼마나 불안한지 잊고 산다. 큰 자연 재앙이 일어나야,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과 인류 문명을 살피게 된다.                                                                                                                            소설가 복거일

재앙을 다룬 과학소설 영화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충격적인 광경들을 본 뒤, 마음에 가장 선연하게 남은 심상은 묘하게도 지진해일에 씻겨 사라지는 땅이었다. 일본 방송들이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도하지 않았다는 사정도 있겠지만, 땅 위에서 사는 존재라서 우리가 땅에 대해 지닌 믿음과 애착이 각별한 점도 있었으리라. 씻겨 사라지는 땅을 보노라니, 영국 시인 존 던의 명상 ‘드러나는 사건들에 관한 기도들’의 잘 알려진 구절이 입에서 절로 나왔다.

“누구도 자족한 섬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대륙의 한 조각, 큰 덩치의 한 부분이다. 만일 흙덩이 하나가 바닷물에 씻겨 나간다면, 유럽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마치 갑(岬)이 씻겨 나간 것처럼, 마치 그대 친구의 또는 그대 자신의 집이 씻겨 나간 것처럼.”

그 거센 물살에 씻겨 사라진 흙덩이들로 아시아가 조금 줄어들었다는 생각은 뜻밖에도 시린 물살로 내 가슴에 넘실거렸다. 이어 한반도에 사는 내가 그 사라진 땅을 일본의 영토라기보다 아시아의 일부라고 보았다는 깨달음이 훈훈한 바람으로 불었다.

 

큰 재앙이 닥치면, 우리는 깨닫게 된다. 국경은 아주 흐릿한 금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온 세계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의 불행과 고통을 안쓰러워하고 도우려 애쓴다. 일본 사람들이 보여준 더할 나위 없이 침착하고 절제된 모습은 우리들의 공감을 한결 크게 했고 일본이 재난을 어렵지 않게 극복하리라는 믿음을 굳게 했다.

큰 재앙이 닥치면, 사람들의 생존 본능은 법과 도덕을 쉽게 무너뜨려서, 약탈과 살육이 흔히 일어난다. 이번에 일본 사람들이 보여준 절제와 배려는 모든 사람의 감탄을 불렀고 일본 사회의 저력을 새삼 돋보이게 했다. 피해의 현장 어디에서도 무질서나 이기적 행태는 보이지 않았다. 모두 두려움을 억제하면서 침착하게 행동했고, 정부나 다른 사람들의 탓을 하지 않고 서로 배려하고 격려했다.

이런 이례적 현상은 어디서 나오는가. 일본 사회의 무엇이 이런 응집력의 원천인가.

작가 구미히코 마키하라는 ‘일본 재앙의 날을 헤치기’라는 글에서 지진이 일어난 날 도쿄에 사는 사람이 겪은 일들을 담담하게 그렸다. 인상적인 부분은 “약탈은 없으리라고 나는 확신했다. 이런 혼란의 시기에 폭발할 수 있는 커다란 분노의 존재를 나는 느껴본 적이 없다”라는 구절이었다. 이 구절을 거듭 읽으면서, 나는 일본 사회의 문화와 저력에 대해 생각했다. 어느 사회에도 분노를 품은 사람들이 드물 리 없지만, 그래도 불만과 분노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사회적 기술이 일본 문화엔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사정은 일본이 이번 위기를 잘 극복하리라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고, 나아가서 일본이 근년의 침체를 분연히 떨치고, 더욱 활기찬 사회를 이루리라는 기대까지 준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위기들에 잘 대응했다. 특히 19세기 중엽에 압도적으로 우세한 서양 문명이 동아시아에 밀려왔을 때, 일본 사회는 위기가 닥쳤음을 잘 인식하고서 효과적으로 대응했다. 덕분에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고 단숨에 강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불행하게도, 그런 성공을 주체하지 못해서, 군국주의를 따라 이웃을 경멸하고 공격했고 끝내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에 패망했다. 그래도 일본은 폐허에서 다시 일어나 경이적인 경제 성장과 사회 발전을 이루었다. 그런 저력으로 이번 재앙도 극복하기를 모두 희망한다.

이 세상에 순수한 것은 드물어서, 큰 재앙에도 밝은 면이 있다. 비극을 맞은 일본 사람들에게로 향하는 공감과 그들을 돕고 싶은 충동은 각박한 나날에 찌든 우리 마음 한구석에 엎드렸던 이타적 심성을 불러냈다. 그런 심성이 보얀 모습으로 일어서면서, 우리는 마음이 밝고 훈훈해지며 몸까지 펴지는 것을 느낀다. 무려 4만 명가량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존 던의 명상의 나머지 구절을 뇌어 본다.

“내가 인류에 연관되었으므로,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작게 만드느니, 결코 사람을 보내지 말아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알아보라고, 그것은 그대를 위해 울린다.”

                                                                                                                                                                                                              복거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