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평인]
쿠바에나 어울리는 전면 무상급식
‘무상급식은 의무교육에 포함된다’는 거짓말이 횡행하고 있다. 이런 거짓이 정치인은 몰라도 지식인들에게조차 별 주저 없이 받아들여지는 게 한국의 슬픈 현실이다.
‘경제학원론’이란 책으로 유명한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예로 들어보자. 스스로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립이라는 이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모든 국민이 최소 9년의 교육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 의무교육을 만들었기 때문에 재벌의 자제도 무상으로 교육의 혜택을 받게 된다”며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가 반드시 수업에만 국한돼야 할 논리적인 이유는 없다. 수업을 받기 위해 필요한 교과서도 무료로 제공될 수 있고, 수업 도중 하게 되는 식사도 무료로 제공될 수 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 교수만이 아니다. 나름으로는 합리성을 추구한다는 강남 좌파 조국 서울대 교수도 자신의 책 ‘진보 집권 플랜’에서 비슷한 얘기를 한다.
그러나 의무교육이 최초로 실시된 서유럽의 역사를 보면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교육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쥘 페리는 1881년 세계 최초로 의무교육을 도입했지만 그로부터 130년이 흐른 2011년에도 프랑스 학교에 무상급식은 없다. 프랑스는 학기 초에 교과서 등 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용품 살 돈까지 주지만 급식비는 꼬박꼬박 받는다. 소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최저 등급 가정도 낸다. 영국도 1891년 의무교육을 실시했지만 급식을 포함시키지는 않았다. 현재도 영국에는 약 15%의 학생이 무상급식을 제공받지만 의무교육에 따른 전면 무상급식 같은 것은 없다.
교육은 보편적이지만 식사는 개별적이다. 먹는 것은 학교의 책임이 아니라 각 가정의 책임이라는 것이 서구인의 사고방식이다. 전면 무상급식은 사실 자유주의 사회가 아니라 공산주의 사회의 이념에 가깝다. 교사의 책임 아래 모든 학생이 무상으로 식사를 받아먹는 모습은 쿠바 같은 공산주의 사회에 잘 어울린다.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에 사회복지가 고도로 발달하고 그 일환으로 전면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지역에서 특히 영향력이 강했던 소련 공산주의와 체제 경쟁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독일에도 그 흔적이 조금 남아 있다. 독일 학교는 전통적으로 오후 수업이 없어 급식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2003년 이후 종일 수업을 하는 학교가 늘면서 급식이 시작됐다. 과거 서독 지역의 학교는 당연히 유상급식이지만 사회민주당(SPD)이 강한 데다 옛 공산당 지지자들까지 가세해 좌파세력이 장악한 베를린 등 몇몇 옛 동독지역 지자체에서는 무상급식 압력이 높다.
우리 집 아이가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5만여 원의 3월 급식비 청구서가 날아왔다. 아내가 지난해까지 내지 않던 급식비를 내야 하는 게 짜증난다는 듯이 반응했다. 경기도는 초등학교 전 학년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있어 지난해까지 그 혜택을 봤다. 아내의 반응에서 한번 실시된 무상급식을 다시 거둬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복지의 확대는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처음에 어떤 틀을 짜느냐가 중요하다. 전면 무상급식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잘못된 출발이다. 급식비를 안 내는 아이들의 자존심이 문제가 된다면 빈곤한 가정에 급식비를 지불해주고 돈을 내게 하라. 그게 돈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 낫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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