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
더불어 사는 즐거움
평생 돈을 원 없이 벌어보는 게 소원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찢어질 듯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10여 명이 넘는 가족을 부양하느라 그는 자기 삶을 돌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부터 그는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생업전선으로 뛰어들어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가족 부양하는 일에만 혼신을 다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갖은 멸시와 무시를 당하며 인생의 밑바닥을 기는 동안 그는 마음에 깊은 한을 품었습니다. 언젠가 내가 원하는 만큼 돈을 벌면 세상을 등지고 인간이 없는 깊은 산중에 들어가 신선처럼 생애를 보내리라.
오직 가족 부양만을 위해 살아온 그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나이 마흔이 되던 해부터 시작한 만두전골집에 손님이 끊이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입소문을 타고 방송까지 타면서 그의 식당은 명소가 되어 날마다 손님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출했습니다. 세 들어 있던 식당 건물을 사고 옆 건물까지 사서 식당을 확장했습니다. 그래도 돈은 쉬지 않고 벌려 단 10년 만에 그는 요지의 땅과 몇 군데의 상가건물을 소유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돈을 벌 만큼 벌자 그는 자기 삶에 대한 염증이 생겨 더는 식당일을 하기가 싫었습니다.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던 손님도 반갑지 않고 자신을 단지 식당주인으로만 대하는 주변 사람들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식당을 정리하고 물 좋고 산 좋은 곳에 몇천 평의 땅을 사 멋진 전원주택을 짓고 말년을 보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한적한 전원생활에 대한 기대보다 평생 가족을 부양하느라 마음 깊은 곳에 품었던 인간에 대한 염증 때문에 사람이 없는 곳으로 도피를 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영혼은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그가 산중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한 초기에는 한동안 일가친척과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찾아와 전원생활을 부러워했습니다. 하지만 1, 2년이 지난 뒤부터 차츰 발길이 끊겨 그의 전원주택에는 달랑 부부만 남아 휑뎅그렁한 정적과 고요에 지쳐 활력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가난한 시절에 사람들에게 받은 뼈저린 상처를 되새기며 자신이 선택한 전원생활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모질게 마음을 다져먹었습니다. 하지만 태풍이 휘몰아치는 밤이나 눈보라 치는 밤, 장맛비 쏟아지는 밤이면 사람이 너무 그리워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지친 어조로 “여보, 우리 다시 도시로 나가요”라고 애원조로 말하던 겨울밤,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힘없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자신이 미워하고 증오했던 사람까지 그리워지는 그 심정을 어떻게도 설명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서로를 되비치며 영롱하게 반짝거리는 보석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비추고 상대방이 나를 비추니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 같은 역할을 하며 동반 상생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것을 거부하고 파괴하고 일탈해서 성취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울림을 통한 조화, 조화를 통한 상생만이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를 창공의 별처럼 빛나게 합니다. 더불어 사는 즐거움, 그것이야말로 더불어 보석이 되는 참다운 길입니다. 주변의 보석 같은 존재들, 한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영롱하게 되비추어야겠습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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