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게시판

방사능포비아 너무 부풀려졌다

namsarang 2011. 4. 2. 23:39

[오늘과 내일/정성희]

방사능포비아 너무 부풀려졌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의 방사능 누출 사고 이후 원자력에 대한 회의론이 거세지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원전정책에 변화가 없음을 분명히 했지만 많은 나라들이 원전 재검토에 들어갔다. 방사능 공포로 공황 상태인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는 원전 증설계획 백지화 의사를 내비쳤다. 최대의 원전 수요국이 될 것으로 예상되던 중국의 원전 재검토 선언은 ‘원전 르네상스’에 찬물을 끼얹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점진적 탈핵’ 선언에도 불구하고 독일 집권 기민당은 주 의회 선거에서 대패했다. ‘원전 리더십’으로 득점한 이명박 대통령의 입지도 좁아졌다.

원자력, 물론 최선은 아니지만

국민의 원전에 대한 거부감도 커지고 있다. 2009년 12월 27일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 이후 원자력문화재단의 국민인식조사에서 87%가 ‘원자력 발전이 필요하다’, 69%는 ‘안전하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누출 사고 이후 지난주 동아일보 조사에서는 ‘원전이 불안하다’는 응답이 43%, ‘안전하다’는 응답은 22%에 그쳤다.

원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자는 목소리를 이해할 만하다. 진보신당은 2040년까지 완전한 탈핵을 목표로 신규 원전 건설의 중단과 적정 운전기간이 지난 원전의 폐쇄 등을 요구했다. 환경단체들도 “원전은 위험하고 비경제적 발전”이라며 원전정책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환경단체나 진보진영은 원래 ‘반핵(反核)’을 핵심 가치로 하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이번 사고 이전에도 나는 원자력이 안전하고, 깨끗하고, 값싼 에너지라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원자로는 온실가스에서는 자유롭지만 우라늄을 채굴하고 정제하는 과정에서 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한다. 원전용지 선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방사성폐기물 처리비용 및 원전해체 비용까지 감안한다면 원자력은 결코 저렴하지 않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말해주듯 원자력에 100% 안전이란 존재할 수 없다. 요컨대 원자력은 최선이 아닌 차악(次惡)일 뿐이다.

그러나 원자력에 대해 좀 더 솔직해질 필요는 있다. 우리가 원자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거창한 명분 때문이 아니라 값싼 전력에 의존하며 굴러가는 삶의 방식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력이 부족해질 때 우리 삶이 어떻게 바뀔지는 일본을 보면 안다. 지하철이 끊기고,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병원에 난방과 전기가 중단되는 사태를 ‘전(電)의 안락’에 익숙해진 우리 국민이 감내할 수 있을까. 원가보다 낮은 전기요금도 인상하지 못하는 게 현실 아닌가.

 

안락한 생활 원하며 원전 반대는 위선

사상 최대 인파가 모인 독일 원전반대 시위에서 던진 한 참가자의 발언이 가슴에 와 닿는다. “당장 원자력을 중지해야 합니다. 그 대신 전력 소비를 줄이겠습니다.” 독일 국민의 원전 반대운동이 설득력을 갖는 것은 그에 따른 희생을 국민이 수용할 태세가 돼있어서다. 반면 원전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이중적이다. 원전의 위험성엔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원전을 그만둘 경우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복지 증대는 원하지만 복지를 위한 증세에 반대한다는 국민의식 조사와 유사한 이중성이다.

라이프스타일을 총체적으로 바꿀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원전 반대 주장은 공허할 뿐이다. 태양광, 풍력, 지열 등 원전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신재생에너지가 상용화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거나 대안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환경단체들도 해골마스크로 원전의 위험성을 부각하기 전에 대안을 더 고민해야 한다. 국민도 있지도 않은 방사능비에 지레 겁먹을 게 아니라 ‘원전 없는 삶’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해보는 것이 바른 순서 같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