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뒤 한국을 빛낼 100인]
<4> 장대익 교수가 말하는 김빛내리 서울대 중견석좌교수
기사입력 2011-04-11 03:00:00 기사수정 2011-04-11 10:06:03
“국내서 시작한 연구로 세계적인 성과 그 존재만으로도 젊은 과학도에 큰 힘”
국가과학자인 김빛내리 서울대 중견석좌교수는 새 분야를 개척하는 리스크를 호기심과 열정으로 이겨냈다. 김 교수는 현재 안식년을 얻어 미국에 체류 중이다. 동아일보DB
작년 여름 어느 날, 김빛내리 교수와 점심을 함께하다가 서울대 계약교수로 지내던 그의 ‘무명’ 시절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무명’이 웬 말이냐고 하겠지만, 계약 연장을 걱정하던 평범한 연구자에서 서울대(중견석좌교수)를 넘어 노벨상에 다가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 과학자(국가과학자)로 진화한 그의 화려한 경로를 추적해 볼 때 결코 무리한 표현은 아니다.
당시 내가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은 10년 전 계약직 연구자의 신분임에도 어쩌다가 ‘마이크로 RNA’라는 새로운 연구 주제를 발굴하고 매진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말도 마세요. 많이 헤맸어요. 헛다리를 짚었다면 짐 싸야 할 판이었어요.” 그의 이런 절박한 모험의 배후에는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는 은사 교수님의 배려가 있었단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연구자의 관점에서 당시 김 교수의 선택은 아찔한 것이었다. 국내 이공계의 최고 과학자(공학자)들이 낸 세계적인 연구 성과들을 잘 뜯어보라. 국외의 지도교수나 동료들과 한 팀을 이뤄서 낸 성과들이 대다수이다. 국내에서 이룩한 세계적인 성과이긴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실제로 여기서 새롭게 시작한 연구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김 교수는 여기 관악에서 세계적인 미답지에 첫발을 내디디고 그 땅을 일궈온 진정한 개척자다. 이런 개척은 과거 학연과의 단절을 가져다줄 수 있기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이들은 하기 힘든 선택이다.
요즘 대학생들이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화려한 ‘스펙’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하는 중요한 선택들을 보면 실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너무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인데 스펙 관리를 통해 사회에 안정적으로 진입하려는 욕망만 가득하다. 특히 수학과 과학이 대학 입시나 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한 도구 과목으로 전락한 지는 꽤 오래됐다. 그러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학생들의 수학 및 과학 점수는 최상위권이면서 배움의 이유와 즐거움은 최하위권인 이상한 나라가 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어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대개 안정된 미래를 원하는 욕망만큼만 위험을 무릅쓴다.
10년 전 김 교수는 달랐다. 이전부터 잘하던 일을 멈추고 새로운 선택에 인생을 걸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아마 오늘처럼 그가 국가의 금지옥엽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를 남다르게 만든 것은 이렇게 모험적 선택을 가능하게 한 용기와 힘이다.
김 교수는 이제 공인이다. 많은 국민과 언론이 그가 한국 최초의 노벨 과학상 주인공이 되기를 염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이지만, 이미 많은 젊은이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있는 그의 존재만으로도 고마울 뿐이다. 특히 “안전한 길을 가라”는 주변의 보수적인 조언과 “가지 않은 길을 가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갈등하는 잠재적 과학도에게 그는 진지한 도전일 것이다. 또 늘 불리한 여건 때문에 고민하는 여성 과학도에게도 그는 희망이다. 그도 한때 육아를 위해 연구자의 삶을 포기하려고까지 했던 평범한 여성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혹시 노벨상에 대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닐까. 김 교수처럼 호기심과 열정을 가진 이들이 마음껏 모험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일!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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