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혁백]
카네이션, 재스민, 그리고 북한의 민주화
T S 엘리엇이 노래하지 않았더라도 4월은 독재자들에겐 잔인한 달임에 틀림없다. 1974년 4월 25일 포르투갈 시민들은 앙골라 식민전쟁에서 회군하여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청년장교들의 총구에 감사의 표시로 카네이션을 달아주면서 ‘카네이션 혁명’은 성공하였다. 포르투갈에서 시작된 ‘제3의 민주화 물결(Third Wave)’은 지중해의 스페인과 그리스를 민주화시킨 뒤 대서양을 건너 남미, 다시 태평양을 넘어 필리핀과 한국을 민주화시켰으며, 마침내는 1989년 동유럽과 러시아의 사회주의 일당독재정권을 도미노처럼 무너뜨렸다. 민주화는 세계사적인 대세가 되었고 민주주의는 지구촌의 보편적인 정치체제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세계사적인 대세에 역행한 예외가 있었다. 중동의 전근대적인 군벌, 족벌, 세습, 신정 정치가 혼합된 가산제적(家産制的·patrimonialism) 독재와 동아시아의 잔존(殘存) 사회주의 국가들이었다.
그러나 중동도 역사의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다.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페이스북, 트위터, 위키리크스와 같은 온라인매체를 통해 시민들은 튀니지 국화인 재스민의 민주화 향을 확산시켜 알리 대통령의 23년 독재를 종식시켰다. 재스민 향은 이웃 이슬람국가로 번져 이집트의 무바라크를 퇴장시켰고, 리비아의 철권 통치자 카다피도 현재 가장 잔인한 4월을 맞이하고 있다. 재스민 민주화 바람은 중동으로 번져 모래 폭풍으로 바뀔 태세다.
재스민 혁명, 온라인 민주화의 힘
재스민 혁명은 지중해, 남미, 동아시아, 동유럽의 ‘제3의 물결’과 성격을 달리한다. ‘카네이션 혁명’으로 시작된 ‘제3의 물결’은 한국, 스페인, 브라질, 체코와 같이 경제적으로 근대화된 나라들에서 일어난 민주화이고, 독재에 저항하는 민중을 거리로 동원해 달성한 오프라인 민주화이다. 반면 ‘재스민 혁명’으로 부르는 중동의 민주화는 SNS(Social Network Service)라는 탈근대적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근대적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온라인 민주화이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전근대적인 군벌주의와 족벌주의를 근대적인 소통과 동원을 통해 민주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재스민 혁명의 혁신성은 탈근대적인 소통과 동원을 통해서 난공불락의 전근대적인 독재정권들을 무너뜨렸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재스민 민주화가 북한에도 가능할 것인가? 현재 전근대적 가산제적인 족벌체제가 주민을 장기 지배하고 있는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이 시도되고 있다. 3대 세습은 ‘계승의 위기’ 극복 없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김정일 부자가 천안함 격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한반도를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은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위협유인전략이기도 하지만, 북한 주민들에게 젊은 애송이 후계자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한 대내용 ‘충격과 공포’ 전략이기도 하다. 김정일 부자는 “군주는 백성의 사랑을 받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경구를 따라 ‘3대 세습’의 기록을 세우려 하고 있다. 이런 북한에서 재스민 혁명이 재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국에서도 온라인 민주화 운동가들이 재스민 민주화를 실현해 보려 하였으나 그들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올라오자마자 공안에 의해 제지되고 체포되었다. 북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먼저, 튀니지와 이집트는 유럽인들이 선호하는 관광지로 SNS나 인터넷서비스를 관광객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일반 시민들에게도 확산되어 SNS 혁명의 인프라가 구축되었다. 관광이라는 오프라인상의 신(新) 유목적 이동이 SNS라는 온라인상의 신 유목적 이동과 접목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관광국도 아니고 인터넷과 SNS도 발달되지 않았다. SNS가 제공된다 하더라도 콤팩트하고 폐쇄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온라인 통제가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북한은 튀니지나 이집트와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억압기구나 정보기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민중동원도 쉽게 진압될 것이다. 더구나 북한에는 중국이 있다. 중국은 자신의 이빨을 보호해 주는 잇몸 같은 북한정권의 상실을 초래할 북한 민주화를 저지하려 할 것이다.
북한 변화의 토대부터 구축해야
북한에서 단기적으로는 재스민 혁명이 일어나기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온라인 소통과 동원을 통한 탈근대적 민주화가 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21세기에 어떤 독재자도 인터넷 혁명을 차단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민주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이 정착되어 더는 북한의 독재자들이 남북대결을 빌미로 주민의 자유를 억압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둘째, 동북아평화공동체를 구축하여 중국이 앞으로는 순망치한(脣亡齒寒) 때문에 북한을 보호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북한으로 하여금 산업화를 건너뛰어 바로 정보기술(IT) 혁명을 이루도록 지원함으로써 온라인 소통과 동원을 통한 탈근대적 민주화의 꽃을 피우게 해주어야 한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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