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전지성]
빈라덴 죽음에 아랍권이 침묵하는 까닭은?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의 사망 소식이 발표된 지 5일이 지났다. 그러나 보복 테러 등 아랍권에서 우려했던 극단적인 반응은 아직 안 보인다. 미국을 적대하는 이란에서조차 종교 지도자들의 비난을 제외하면 시민들의 집단행동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빈라덴을 따르던 극단주의 세력들이 생전의 그를 ‘반미(反美) 성전(聖戰)의 용맹한 사자’로 치켜세웠던 것에 비하면 사뭇 조용한 느낌이다.
중동 전문가들은 올 초부터 아랍 세계에 몰아친 재스민 혁명에서 원인과 배경을 찾는다. 아랍에미리트 내 에미리트대 정치학과 압둘칼레크 압둘라 교수는 6일 AP통신에 “빈라덴은 파키스탄에서 사살되기 전 이미 (재스민 혁명이 성공한) 이집트에서 ‘죽었다’”고 말했다. 서구식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 개혁과 자유를 갈망하는 아랍 젊은이들 사이에 극단의 이념을 자극하는 알카에다가 이미 설 자리를 잃었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아랍 젊은이들이 최근 알카에다의 폭력과 지하드(성전)가 아닌 평화적인 방식으로 변화를 이끌어낸 역사적 경험을 성취했다는 점이다. 미 브루킹스연구소 도하센터 살만 샤이크 소장은 이날 AFP통신에 “아랍 세계는 이미 알카에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써 왔고 아랍인들은 테러리스트와 극단주의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알카에다와 빈라덴의 존재는 서구뿐 아니라 사실상 아랍 세계 내부에서도 껄끄러운 존재였다는 점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사드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는 3일 성명을 통해 “모든 무슬림은 빈라덴과 테러가 아랍과 이슬람에 해롭다는 걸 알고 있다. 오히려 그의 죽음은 그의 순교 명령에 따라 자살폭탄테러에 동원됐던 젊은이들에 대한 동정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뜻밖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권 어딘가에서는 보복이 준비되고 있을지 모른다. 알카에다 2인자로 꼽히는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건재하고 파키스탄과 예멘에선 알카에다의 후예들이 양성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남부 도시 카라치에선 빈라덴 사후 그를 추모하는 1000여 명의 추모 행렬이 거리를 메우기도 했다. 하지만 강경 이슬람 무장세력이 득세하는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선 동시에 “우리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게 제발 테러를 중단하라”며 알카에다의 깃발을 불태우는 시위가 열렸다. 평화를 바라는 아랍 세계의 갈망이 서구의 바람과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전지성 국제부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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