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
타잔 콤플렉스와 타잔의 법칙
원자는 너무 가볍지만, 원자력은 너무 무겁다. 원자의 질량은 원자핵에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를 더한 뒤 그 결합에너지를 뺀 값으로, 10-²⁴g 차원이다. 이렇게 가벼운 원자의 질량을 토대로 원자력을 계산한 과학자가 바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그는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을 통해 질량·에너지 등가공식(E=mc²)을 발표했다. 어떤 물질의 질량이 에너지로 바뀌면 그 질량(m)에 빛의 속도(c)의 제곱을 곱한 만큼의 에너지(E)가 생긴다는 것이다. 석탄 1g을 핵반응시키면 이를 태우는 것보다 30억 배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원자력의 무게가 실감나지 않는다면 히로시마, 체르노빌, 후쿠시마 같은 지역을 떠올리면 된다.
이 어마어마한 힘을 격납용기에 가둘 수 없는 경우, 곧 원자로 손상이나 노심용융(melt down) 같은 대형 사고가 발생하는 끔찍한 경우에 대해 원전 과학자들은 상상조차 하기 싫어한다. 우리 원전은 이미 안전하게 설계되어 있고, 정상 가동하고 있으며, 앞으로 설계할 4세대 원전에서 안전기능을 더욱 강화하고, 지진이나 해일 같은 천재지변에 대한 대책도 세우고 있으니 아무 걱정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대중의 원자력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오해와 편견을 답답해한다. 원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고장을 사고로 받아들이는 대중의 조바심에 대해 손사래를 친다. 이를 과학자의 ‘타잔 콤플렉스’라고 한다. 대중이 정글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왜 두려워하는지 한탄하며 자신의 나무 위에서 가슴을 쾅쾅 치며 답답해하는 타잔이다.
당국은 또 어떤가. 자신의 임기 중에 자신의 소관 업무에서 문제만 나지 않으면 된다. 후쿠시마 사태를 전후하여 부랴부랴 원자력안전기술원의 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원자력안전국을 신설하고, 원자력 전문가를 배치하고,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설치하고….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할 수 있는 대책은 거의 다 쏟아냈다.
원전이 항상 과학자의 설계도 그대로 가동되지는 않듯이, 당국의 대책이나 매뉴얼 그대로 운영되는 것도 아니다. 예산과 담당자가 정해지지 않으면 대책이나 매뉴얼은 서류일 뿐이다. 새로 제시한 방향으로 갈아타기까지 한참 걸릴 것이다. 이를 ‘타잔의 법칙’이라고 한다. 정글에서 줄을 탈 때 새 밧줄을 확실하게 잡기 전까지는 지금 쥐고 있는 밧줄을 절대 놓지 않는 타잔이다.
체르노빌 원전은 현장 과학자의 무모한 자신감에서 폭발했고, 후쿠시마 원전은 안전제일의 최고 매뉴얼조차 녹여 버렸다. 자신의 정글만 고집하는 ‘타잔 콤플렉스’와 쉽게 밧줄을 바꾸지 못하는 ‘타잔의 법칙’ 때문에 빚어진 참사다.
영화 ‘스파이더맨2’를 보면 온순한 핵물리학자인 오토 옥타비우스(Otto Octavius)가 핵융합을 연구하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방사성 물질을 맞고 엄청난 힘을 가진 악당 닥터 옥토퍼스(Dr. Octopus)로 변신한다. 거미줄로만 싸우기에 역부족이었던 스파이더맨이 그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숙부의 유언 덕분이다.
원자력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금언이다. 보통 사람들의 업무 책임(E)을 E=km(k는 업무별 상수, m은 업무의 무게)이라 한다면, 원자력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책임은 아인슈타인의 공식대로 E=mc²(c는 빛의 속도)이 될 것이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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