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녀석이 말하길 지난번에 자살한 형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자기도 공부가 잘 안 되면 '차라리 죽어버릴까 보다'하는 생각이 든다고 해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공부를 못하면 모르겠는데 나름 성적이 좋아서 그런 생각을 하리라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아들 입에서 나온 이야기라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어떻게 하면 아들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요? 그리고 또 얼마 전에는 성당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해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성당에서는 자살한 사람들을 죄인 취급하고 장례미사도 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망했다는 것입니다. 새가슴인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참 난감합니다.
A. 우선 자살에 대한 우리 교회 입장부터 알려 드리지요. 요즘 자살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자살을 하고 나면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있습니다. 우선 자살자에 대한 동정이고, 그 다음은 자살 원인제공자에 대한 비난입니다. 우리 교회는 사회의 이런 일반적 반응과는 다르게 자살문제를 다룹니다. 자살 원인제공자가 아닌 자살자 자신에 대해 엄중하게 죄를 묻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한 교만죄를 묻는 것이지요. 이것은 주님을 팔아넘기고 자살한 유다의 경우에 입각한 판단이라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살자 모두에게 엄한 것은 아닙니다. 심각한 정신적 문제 때문에 자살한 경우에는 예외로 대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들 가운데서도 자살행위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입니다. 그는 "자살하는 사람들은 자기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다, 더는 살 이유가 없다고 하면서 자살을 택하는데 이것은 인생은 그 끝을 볼 때까지 의미가 있다는 인생의 법칙을 위반하는 행위이기에 절대로 자포자기해 자살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어쨌건 우리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문 지상이나 세간에서는 자살 원인을 대개 외부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환경적 여건의 열악함이 자살의 주요 원인이란 것인데 물론 그런 것이 일부 원인이 되기는 하지만 직접 원인이 된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대개 자살하는 사람들은 의지와 인내심이 부족하거나 자기에게 가해지는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완충장치가 없는 이들입니다. 즉, 심리적으로 허약한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야기된 급성 정신질환에 의해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정신적으로 허약한 것일까요?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어서입니다. 인간의 사고방식은 '단선적 사고'와 '복선적 사고'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단선적 사고란 A는 A이지 B는 절대 될 수 없다고 하는 아주 고지식한 사고방식입니다. 이에 반해 복선적 사고는 A가 때로는 B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 두 가지 사고 중에서 단선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자살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왜냐면 단선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상황이 안정적일 때는 진가를 발휘하고 인정받으나, 상황이 복잡 미묘해지고 갈등이 증폭되면 쉽게 취약점을 드러내고 자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단선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자살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선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식당에서 사람들이 뛰어나간다고 자기도 밥 먹다 말고 뛰어나가는 사람과 같습니다. 따라서 가끔은 자기에게 질문을 해야 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늘 쫓기듯 살고 있을까?', '무엇이 나를 이렇게 불안하게 만드는 것일까?'하고 말입니다. 그래야 남들이 뛴다고 정신없이 뛰다가 자기 페이스를 잃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냥 멍하니 쉬는 시간을 가져도 좋습니다. 왜냐면 단선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엔진이 과열되기 직전 차와 같아서 무조건 열을 식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 과부하가 걸린 뇌를 식혀주는 시간을 가져야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심리학자 칼 로저스의 방법을 추천합니다. 로저스는 심리적으로 힘겨운 사람들은 자기 약점과 힘겨움을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토로하는 것이 아주 좋다고 했습니다. 사소한 체면이나 자존심에 구애받지 말고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야말로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면서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가끔 '세상에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하면서 모든 일을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분이 있는데, 이런 분이야말로 헛똑똑이며 자살할 확률이 높은 사람들입니다.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