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사설] 2011년 5월 31일 화요일
대형 태극기 밟고 선 한명숙 전 총리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2주기 분향소에서 태극기를 밟고 서 있는 사진이 인터넷 공간에서 확산되면서 ‘국기(國旗) 모독’ 논란이 일고 있다. 한 전 총리는 23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깔아놓은 대형 태극기를 밟고 서서 태극기 중앙에 세운 ‘고(故) 노무현 추모비’에 국화 한 송이를 바쳤다. 이에 대해 형법 제105조의 ‘국기·국장(國章) 모독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책임을 주최 측에 미루는 견해도 있다.
태극기를 밟지 않으면 원천적으로 추모비에 헌화할 수 없게 만든 주최 측의 의도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하필 태극기 위에 추모비를 설치한 의도는 또 뭔가. 단순히 노 전 대통령의 애국심을 돋보이게 하려는 퍼포먼스로는 보이지 않는다. 태극기로 상징되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생각이 개입된 것은 아닌가. 일부 좌파단체가 흔히 행하는 ‘민중 의례’와 맥을 같이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은 국민의례 때 하는 애국가 제창과 국기에 대한 경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거나 ‘민주열사에 대한 묵념’을 올린다. 정부는 공무원노조에 민중 의례 금지 공문을 보낸 일도 있지만 소용이 없었다.
조선왕조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던 19세기 말에 태어난 태극기는 국권을 상실한 일제강점기에 독립 정신의 표상이었다. 1919년 3월 1일에는 전국 각지에서 남녀노소가 태극기를 들고 나와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가 패망하고 이 나라가 광복을 되찾자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태극기를 들고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태극기를 인정하지 않는 곳은 붉은 별이 들어간 ‘인공기(人共旗)’를 쓰는 북한뿐이다.
대한민국국기법은 제1조와 5조, 10조에서 국기의 존엄성 수호와 존엄성 훼손 방지를 국민의 의무로 부과하고 있다. 국가의 존속과 정체성 유지, 국가 위상 제고가 그 목적이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國葬) 때는 영구(靈柩)를 덮었던 태극기를 유족 측 요청에 따라 관과 함께 묻었다가 뒤늦게 다시 파헤쳐 태극기를 꺼낸 일도 있다. ‘국기를 영구와 함께 매장해서는 안 된다’는 국기법 규정 때문이었다.
전직 국무총리가 맨발로 태극기를 밟고 서 있는 행동을 주최 측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국무총리와 장관, 국회의원을 지낸 인사가 국가와 국기에 대한 기본 인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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