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사설] 2011년 6월 2일 목요일
저축銀 수사, 청와대 박지원 김종창 聖域 없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부산저축은행그룹으로부터 수천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포착된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의 사무실을 어제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1급 공직자인 김 원장이 저축은행 규제완화 업무를 총괄하는 금융위원회 서비스국장으로 일할 당시 수뢰가 이뤄진 것으로 보고 오늘 소환조사키로 했다. 구속된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으로부터 부산저축은행 구명(救命) 청탁을 받은 의혹이 제기된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도 곧 소환할 방침이다.
김종창 씨는 2000년 2월부터 4년간 금감원 부원장과 기업은행장, 2008년 3월부터 3년간 금감원장을 맡았다. 그가 금감원장에 임명되기 직전까지 등기이사로 있었던 부동산신탁업체인 아시아신탁이 지난해 부산저축은행 유상증자에 참여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금감원 원장과 부원장을 지낸 김종창 씨, 금융위 출신 현직 공무원으로 첫 수사선상에 오른 김광수 씨가 부산저축은행 불법과 비리를 감싼 사실이 확인된다면 국민의 분노가 더 커질 것이다.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올해 3월 국회 법사위 질의에서 “부산저축은행은 감사의 대상이 아니지 않으냐”며 “많은 저축은행들이 감사원의 편법적 감사, 불법적 감사 때문에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4월에는 “(감사원이) 저축은행의 내부 자료를 예금보험공사 등을 통해 요구했는데 민간 금융기관까지 감사하는 어떤 법적 근거가 있는가”라고 따졌다. 그는 뒤늦게 “감사원은 민간기업 감사 권한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누가 봐도 부산저축은행 등 일부 저축은행을 비호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박 전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저축은행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을 자격이 없다.
現 정권-前 정권 정략적 거래 철저히 타파하라
민주당은 저축은행 부실과 관련해 청와대의 권재진 민정수석, 정진석 정무수석비서관, 김두우 기획관리실장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당사자들은 민주당의 공세를 ‘전형적인 정치적 음해’라고 반박했다. 청와대 인사들이 비리에 연루됐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았고 민주당도 권 수석과 김 실장에 대해서는 발을 뺐지만 야당이 의혹을 제기한 이상 진위를 철저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대주주 및 경영진이 주도해 7조 원이 넘는 불법 대출과 횡령을 저지른 초대형 금융사기 사건이다. 1997년 외환위기 전만 해도 제2 금융권에서조차 비중이 미미했던 부산저축은행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국내 굴지의 저축은행으로 급성장했다. 각계의 유력 인사들이 뒤를 봐주지 않았다면 이런 회사가 10년 넘게 활개를 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부산저축은행 최대주주인 박연호 회장 등 경영진은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 회사 덩치를 키우거나 살아남으려고 전방위 로비를 해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검찰은 ‘저축은행 게이트’에 연루된 인사는 현(現) 정권이든 전(前) 정권이든, 여(與)든 야(野)든 가리지 말고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청와대 인사, 박지원 김종창 씨 누구도 성역(聖域)일 수 없다. 혹시 있을 수 있는 현 정권과 전 정권 인사들 간의 정략적 거래는 타파해야 한다.
특정 학연과 지연으로 연결된 부산저축은행의 폐쇄적인 경영 구도도 부실과 비리를 키웠다. 박연호 회장과 김양 부회장 등 이 은행의 핵심 경영진, 부산저축은행 2대 주주이면서 노무현 정부 시절 사세(社勢)를 키운 해동건설 박형선 회장, 검찰이 수뢰 혐의를 포착한 김광수 원장은 모두 광주일고 동문이다. 삼성꿈장학재단과 포스텍이 부산저축은행에 500억 원씩을 투자하도록 주선한 KTB자산운용 장인환 대표도 이들과 같은 고교 출신이다. 장 대표는 삼성꿈장학재단의 기금관리위원과 포스텍의 자금운용 자문위원도 맡고 있다.
김황식 총리는 “감사원장으로 저축은행 감사를 할 때 오만 군데에서 압력을 받았다”고 했다. 김 총리는 자신에게 들어온 ‘오만 군데 압력’의 전모를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저축은행 부실 처리를 위해 예금보험공사의 예금대지급을 포함해 11조5000억 원의 공적자금을 쏟아 부었다. 이 과정에서 급성장한 일부 저축은행이 다시 부실의 늪에 빠지면서 10조 원 이상의 추가 공적자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우리나라 전체 예산의 6%에 가까운 21조 원이 넘는 세금을 잡아먹게 될 ‘저축은행 게이트’의 전모를 사실 그대로 철저하게 밝히고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런 부패를 그대로 두고 ‘선진, 공정사회’를 운운한다면 코미디라고밖에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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