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이야기

(1)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

namsarang 2011. 6. 5. 23:43

[재미있는 가톨릭 교리]

(1)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

   평화신문은 창간 23주년을 맞아 교육상식면을 새롭게 개편합니다. 서울대교구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경외감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하느님과 그분의 신비를 쉽고 재미있는 예화를 곁들여 풀어줄 것입니다.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TV와 라디오를 통해서도 방송됩니다.

 '튼튼기초 신앙쑥쑥 재미있는 가톨릭교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신앙의 기초지식을 전하는 기획물로, 서울대교구 사목국(국장 민병덕 신부)이 발간한 예비신자교리서 「함께하는 여정」에 기초해 제공합니다.
 두 신설 기획물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이들은 물론 교회에 갓 발을 들여놓은 이들 모두에게 가톨릭 신앙에 대한 이해를 넓혀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늘 인간을 찾아 나서시고 인간에게 말씀을 건네신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사람과 그 아내가 죄를 지은 다음 당신을 피해 숨었을 때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라고 물으신 것은 사람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마음대로 살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본래 모습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지금 과연 어디에 있는지, 현 존재나 처지, 상태가 어떠한지를 물으신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죄를 지은 사람에게 여전히 당신과 상호 관계를 맺는 '너'라는 호칭을 쓰셨다. 하느님께서는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후에도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창세 4,9)하고 물으시면서 동생 아벨을 지키고 돌봐야 하는 형 카인의 책임과 의무를 상기시키셨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에 악이 많아지고 사람들이 언제나 악하기만 하여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려 하셨을 때에도 의롭고 흠 없는 사람인 노아를 부르셨다. 하느님께서는 노아에게 "너는 전나무로 방주 한 척을 만들어라"(창세 6,14)하고 명령하신 다음, 그의 가족들과 생물의 암수 한 쌍씩을 방주에 데리고 들어가라고 말씀하시면서 인류의 타락에도 구원의 희망을 남기셨다.

 하느님께서는 온 세상 모든 이들을 부르시기에 앞서 먼저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부르셨다. 하느님께서는 성조 아브라함과 야곱을 부르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고역에 짓눌려 탄식하며 부르짖었을 때도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시고, 그 소리를 귀여겨 들으시며 당신의 중개자로 모세를 부르셨다. 더 나아가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으셨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 된다는 계약이었다.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가서시며 그들을 부르신다. 하느님께서는 과거, 현재, 미래를 넘어 언제 어디서나 인간을 찾아 나서시고 인간을 부르신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셨고,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부르시며 먼 훗날 우리 후손들도 부르실 것이다.

 하느님 부르심은 인간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느님에 의해 이뤄지는 은총의 선물이며 아무런 대가 없이 거저 주시는 무상의 선물이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시며 우리가 당신 부르심에 응답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한처음부터 하느님께서 인간을 부르시듯이, 인간 역시 늘 하느님을 찾고 갈망한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절대자를 갈망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 무수히 많은 종교가 있다는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종교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수많은 학자들이 종교가 무엇인지 나름대로 정의를 내렸지만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종교현상이 그만큼 난해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고대세계에도 엄연히 종교 현상이 존재했지만 '종교'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종교(宗敎)라는 말은 라틴어 '렐리지오'(Religio)에서 비롯됐다. 로마 정치가 치체로는 렐리지오를 신들이 원하는 바를 마음속 깊이 생각하는 것, 특히 전례문을 반복해 암송하면서 생각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에 따라 렐리지오라는 단어는 '레-레제레'(Re-legere), 곧 '다시 읽는다'라는 말에서 파생됐다고 본다.

 성 아우구스티노(354~430)는 렐리지오를 '인간 영혼이 하느님과 결합하려고 노력하는 것', '하느님께서 옛 백성 이스라엘 대신 새 백성 교회를 선택하신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19세기말 일본은 렐리지오를 '근본적 가르침'이라는 뜻을 가진 '종교'(宗敎)라는 말로 번역했다. '종'(宗)은 본래 진리를 터득한 최고의 경지를 뜻하고, '교'(敎)는 이를 말로 표현해 가르치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이 종교현상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일본, 중국, 우리나라 같은 한자 문화권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다. 그리스도교 33%, 이슬람교 21%, 힌두교 14%, 불교 6%, 유교와 도교 6%, 유다교 0.22% 정도이다.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조사에 따르면 200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자생종교와 외래종교 등을 합해 510여 개 이상의 교단ㆍ교파가 존재한다.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의 종교현상을 '종교박람회' '종교백화점' '종교시장'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