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
이 나라는 부패 끌어안고 어디로 가나
한반도에서 가장 부패한 사람은 김정일이다. 2400만 북한 주민 중에 적어도 수백만 명은 굶어죽을 지경인데, 김정일 일가는 ‘왕실 경제’를 향유한다. 군과 당의 간부들은 김일성 왕조를 지켜주는 대가로 ‘특권 경제’를 꿰찼다. 군당(郡黨)위원장만 돼도 군내 주민들을 농락하며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사또 경제’를 즐긴다. 주민 1인당 연간소득이 800달러니 1000달러니 하는 통계는 의미가 없다. 부(富)와 분배권의 대부분을 김정일 체제집단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북한의 핵과 도발에 시달리다 보니 김정일의 부패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할 여유가 없다. 북한 주민들은 공포 정치, 총살 통치에 떨다보니 부패 문제는 입에 담을 엄두도 못 낸다.
세계사를 볼 때 자유민주주의 국가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인민민주주의, 민중민주주의 같은 것을 내세운 공산독재 국가의 부패가 훨씬 심했다. 지금도 러시아와 중국은 부패한 나라로 지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의 큰 부패보다 자유민주 국가의 상대적으로 작은 부패가 더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이것은 자유민주 체제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다. 작은 부패라도 법의 엄정한 심판을 받는 사회라야 부패를 줄일 수 있고, 덜 부패한 나라가 더 부패한 나라보다 결국은 우위에 설 수 있어서다.
남·북 유럽 國運 가른 투명성 차이
국가부도 위기에 빠진 유럽의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는 복지 과잉, 공공부문의 비효율과 함께 사회적 신뢰가 약하다는 점이 비슷하다. ‘사회적 신뢰’란 국민 상호간에 서로를 얼마나 믿느냐는 것이다.
사회적 신뢰를 떨어뜨리는 핵심적 요인이 부패다. 부정과 부패가 퍼져 있으면 이와 무관한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뿐 아니라 실제로 피해를 본다. 땀 흘려 일해 세금을 냈는데 엉뚱한 자들의 부패 때문에 내 세금이 헛되이 쓰인다면 불신과 보상심리가 확산될 수밖에 없다. 어떤 정권이나 내부 부패가 거듭 불거지면 재정의 엄격한 운용도, 국민의 고통 분담도 설득하기 어려워진다. 국민은 ‘너희만 먹느냐, 우리도 다오’ 하며 더 많은 복지를 요구하기 십상이다.
스칸디나비아(북유럽) 나라들은 남유럽의 재정파탄 국가들을 능가하는 복지 천국이지만 고소득국으로 건재하고 국민은 근검절약한다. 정부의 투명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높다는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다. 즉, 세금을 많이 내지만 그것이 나의 이익으로 되돌아온다는 경험과 믿음이 쌓여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도 북유럽식 복지모델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 고(高)세금으로 보편적 복지를 강행한다면 남유럽을 닮아갈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8년 조사한 30개 회원국의 사회적 신뢰지수를 보면 한국은 끝에서 6번째로 PIIGS 국가들의 중간쯤이다.
인도는 중국과 함께 신흥경제국으로 떠올랐지만 지난해 외국인의 직접투자가 전년도에 비해 30% 이상 줄었다. 이에 대해 외국 기업들은 심한 부패와 관료의 규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기업인 셋 중의 하나는 “뇌물이 긴 안목의 투자를 저해한다”고 답했다.
우리나라도 부패를 척결하지 않고는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작년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정상들은 “부패는 공공의 신뢰를 파괴하고, 법치주의를 훼손하며,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국민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축은행 게이트 수사가 꼬리 자르기로 끝난다면 부패 척결은 더 멀어진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3대 정권에 걸친 비리의 냄새를 맡았으면 제대로 한번 청소를 해야 부패를 줄여갈 수 있다. 열에 아홉은 법망을 빠져나가는 공통의 경험이 반복되면 부패 바이러스는 더욱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부패 방조자’ 시험당하는 靑·檢·野
정치권이 검찰 수사에 발을 거는 것부터가 전형적인 법적 부패(legal corruption)다. 그리고 검찰이 권력의 작용에 의해서든, 자의에 의해서든 수사를 마사지한다면 이는 ‘공권력 부패’다. 부패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조장하거나 방임하는 모든 것이 부패다. 한국이 2008년 비준한 유엔 반(反)부패협약에 따르면 결정권자가 몰랐더라도 권력 측근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부패요, 사법 방해도 부패요, 영향력 행사를 매개로 한 거래는 범죄다.
배인준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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