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피카소’ 비운의 종말
기사입력 2011-06-11 03:00:00 기사수정 2011-06-11 03:00:00
말년作 ‘마더 인디아’ 힌두교 분노… 英서 도피생활 끝에 쓸쓸히 눈감아
그의 죽음은 예술적 표현의 자유와 종교라는 화두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일평생 인도인의 사랑을 받아온 후사인은 91세 때 그린 그림 때문에 살해 협박을 받아 고국을 떠나야 했고 끝내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타향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다.
후사인은 2006년 지진해일(쓰나미) 희생자들을 돕기 위한 경매용으로 ‘마더 인디아’(모든 사물에 영혼이 있는 것으로 믿는 인도인들의 사고체계)를 형상화한 그림을 그렸다가 힌두교 단체들의 분노를 샀다. 통상 마더 인디아는 윤회를 상징하는 바퀴 앞에 인도 여성의 전통의상인 사리를 입은 여신이 서있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작가는 ‘전위적 표현’을 위해 사리를 벗긴 나체의 여신을 그려 넣었다. 후사인이 1970년대부터 종종 나체의 힌두신과 여신들을 자주 그려 논란에 휩싸여 왔던 점을 감안하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후사인의 2006년 작품 ‘마더 인디아’.
하지만 2006년은 이슬람 창시자 마호메트를 개로 묘사한 스웨덴 신문의 풍자만평이 세계적 파문을 일으키던 때라 강경 힌두교도들의 반발은 극에 달했다. 극우 단체인 인도힌두민법위원회는 그의 목숨에 5억1000만 루피(약 124억 원)의 현상금을 걸었고 고소도 잇따랐다. 결국 후사인은 망명길에 올랐고 지난해엔 인도 국적을 포기하고 카타르 국적을 취득했다.
무슬림인 후사인은 극장 간판을 그리며 화가로 첫발을 내디뎠고 인도 미술계에선 독학으로 입신의 경지에 오른 최고의 거장으로 꼽힌다. 그의 그림은 인도 미술작품 최고가 기록을 거듭 갈아 치웠다. 최근에도 그의 싱글 캔버스화가 소더비 경매에서 200만 달러에 팔렸다. 2004년에는 인도의 한 사업가에게 10억 루피(약 250억 원)를 받고 1년 동안 그림 100장을 그려주기로 계약을 체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후사인은 뛰어난 영화 제작자이기도 했다. 그가 1967년에 제작한 첫 영화 ‘화가의 눈을 통해’는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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