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상담

(107) 감정에 흔들리면 안 되나요?

namsarang 2011. 6. 16. 20:07

[아! 어쩌나?]

(107) 감정에 흔들리면 안 되나요?



Q. 감정에 흔들리면
저는 수도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위 분들이 수도자가 되려면 자기감정을 잘 절제해야 하고 감정에 휘둘림당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사람이 가진 감정이 온갖 죄의 근원이니 늘 이성적으로 자기 의지로 사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들 하십니다. 제가 생각해도 저는 너무 감성적이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고 감정적 변화가 심한데 제가 수도자가 될 자격이 있을까 걱정됩니다.

 
A. 그렇게 조언하신 분은 정신적으로 그리 건강한 분이 아니니 영적 지도를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물음에 많은 영성가들은 "가슴이 따뜻하고 머리가 냉철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즉, 사람은 이성과 감성의 존재란 말입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이성보다 감성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TV 드라마를 보다가 슬픈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면 부인은 남편에게 감성적이라고 칭찬하기보다 주책없다고 핀잔을 줍니다. 남편 사업이 걱정된다고 부인이 한숨지으면, 남편은 부인에게 감성적이라고 하지 않고 재수 없게 웬 한숨이냐고 합니다. 반대로 감정표현을 하지 않고 늘 말이 없으면 '듬직하다', '사내답다', '맏며느리감이다' 등 칭찬 일색입니다.
 
 이런 식의 편견 때문에 감성적인 사람은 왠지 덜떨어진 사람이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우월한 인간인 것처럼 생각하는 풍조가 한동안 유행했습니다. 물론 이런 풍조가 근래에 생긴 것만은 아닙니다. 중세 서양의 신(神)중심주의 사조에 대항해 생긴 이성주의 사조가 그 원조격입니다.
 
 이들은 사람은 신의 노예가 아니며, 인간 의지와 이성으로 세상사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신조를 만든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성주의 사조는 교회 안에도 영향을 미쳐 신앙생활을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하려는 경향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사람의 이성이 갖는 한계점이 드러나게 됐습니다. 심지어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정상인 사람은 약간 비정상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감성적 삶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사조는 신앙생활에도 영향을 미쳐 감성적 신앙생활이 대세를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자매님의 감성적 성격은 수도자로서 삶에 방해는커녕 도움이 되니 자기비하를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 심리학자 유진 젠들린이 감정에 대해 한 말을 인용해드립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에는 몸으로는 느끼지만 막연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감정이 있다. 또 감정의 흐름이 마치 시냇물처럼 어떤 때는 세차게, 때로는 잔잔하게 흐른다. 이 내면적 흐름은 사람마다 다르며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은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이며, 우리 마음에는 다양하고 풍부한 감정 체험이 일어난다."
 
 그의 말은 인간 마음을 차지하는 것이 이성이 주(主)가 아니라 감성이 주라는 것입니다.
 
 또 데이비드 레이놀즈는 이런 감정에는 몇 가지 법칙이 있다고 했습니다. "감정에는 책임이 없다. 감정은 메시지를 알리는 신호다. 어떤 감정도 유용할 가능성이 있다. 불쾌한 감정은 언젠가는 소멸된다. 행동이 감정에 영향을 준다."
 
 많은 영성가들은 우리가 가진 이런 감정들은 경멸 대상도 아니고 소멸시켜야 할 것도 아닌, 사람의 내적 성장에 필수적 요소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 역시 감성적인 분이셨음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라자로 죽음에 눈물 흘리심과 성전 장사꾼들에게 분노하신 것, 게쎄마니 동산에서 피눈물을 흘리신 것 등이 그렇습니다.
 
 젠들린은 이렇게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간략하게 말해줍니다.
 
 "자기 내면의 감정에 다정하게 대해주면서 자기 감정을 자기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감정을 스스로 존중해주면서 감정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면 그 감정이 인생의 중요한 지혜로 변해 지금까지 깨닫지 못한 것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마음이 편해지고 현재의 자신을 받아들이며, 자기의 진정한 심정이 무엇이었는가를 깨닫게 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감정이 생겼을 때 그대로 인정하면서 천천히 심호흡합니다. 그다음 감정이 말하고자 하는 호소에 귀를 기울이면 감정이 나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그런 다음 그 감정은 바람직한 상태로 변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다른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맺으려고 할 때 사용하는 대화법과 같습니다. 자매님이 감성적이란 것은 수도자의 삶을 사는 데 아주 중요합니다. 기도를 풍요롭게 하고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데 아주 중요한 것이니, 감정을 억압하거나 없애려 하지 마시고 감정과 대화를 통해 풍요로운 감성적 신앙생활을 하시길 바랍니다.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