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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신부는 ‘수단의 슈바이처’ 아닌 ‘톤즈의 돈 보스코‘

namsarang 2011. 6. 27. 23:55

[김창혁 전문기자의 세상이야기]

살레시오회 관구장 ‘남상헌’ 신부

 

 

이태석 신부는 ‘수단의 슈바이처’ 아닌 ‘톤즈의 돈 보스코‘

 

 

한국천주교살레시오회 관구장인 남상헌 신부는 제도권의 교육 현실에도 관심이 많았다. 살레시오회의 교육목표는 ‘정직한 시민, 착한 신자’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이태석 신부가 선종한 지 1년 반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울지마 톤즈’를 보고 눈물짓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했지만, 그 눈물의 기억조차 조금씩 희미해질 만한 시간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일이 언제나 그렇듯이 말이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24일 한국천주교 살레시오회에서 마련한 심포지엄 ‘톤즈의 돈 보스코-이태석 신부의 삶과 영성’을 보고 들으며 순전히 착각임을 알았다.

‘세상일은 그럴지 모른다. 그런데 만약 이태석 신부의 삶이 세상일이 아니라면?’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톤즈의 젊은이들과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을 사랑했던 것처럼, 지금 참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그의 사랑을 칭송하며 따르고자 합니다. 그러나 한편 우려되는 일도 없지 않습니다.”

심포지엄을 준비한 살레시오회 관구장 남상헌 신부(52)는 이렇게 인사말을 했다. 이태석 신부가 남긴 삶의 흔적들을 각자 자신들이 원하는 시각으로만 바라보고 또 이해관계에 맞추어 어느 일면만을 부각시키는 일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섣부르게 그를 이 시대의 영웅으로 만들려는 모습도 있다는 것이다.

남 신부는 “직설적으로 말해보자면, 그를 사랑하고 따른다는 것은 하나의 자연인 혹은 이러저러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웅 이태석’이 아니라 살레시오회 수도자이며 사제인 이태석의 삶과 그 뿌리인 영성(靈性)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을 이었다.

미리 준비한 인사말을 읽어 보다 심포지엄이 시작되기 전 남 신부를 만났다.

―심포지엄 날짜를 오늘로 잡은 이유라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선종 1주기도 아니고…. 무슨 의미가 있는 날입니까.

“(기자의 무지함에 약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오늘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 대축일입니다. 이 신부가 따르려 했던 살레시오 수도회 창립자 돈 보스코 성인(聖人)의 세례명도 요한입니다. ‘돈 보스코’란 ‘보스코 신부님’이라는 뜻의 이탈리아 말이고, 정확한 명칭은 ‘성 요한 보스코’라고 합니다. 이태석 신부의 세례명도 요한이고…. 또 이 신부가 살아있다면 오늘이 사제품을 받은 지 10년이 되는 날입니다. 의미가 있습니다.”(남 신부는 실제 인사말을 할 때 원래 원고에 없던 이 시간적 계기의 의미를 부연 설명했다. 그러자 신자들 사이에서 “아, 그렇구나” 하는 속삭임들이 들려왔다)

―시간적 계기만 살피신 건 아닌 듯합니다만….

“KBS 프로그램 같은 것을 보면 이태석 신부의 삶을 하나의 자연인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이태석 신부를 ‘수단의 슈바이처’라고 부르는 것에서도 그런 의미가 더 크게 들립니다. 하지만 이태석 신부의 삶의 뿌리에는 보스코 성인이 있고 예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수단의 슈바이처’가 아니고 ‘톤즈의 돈 보스코’입니다. 사람들은 심포지엄을 더 빨리 하길 바랐지만 겉으로 드러난 삶의 결과가 아니라 그런 열매를 맺기 위해 어떤 삶의 뿌리가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싶어 오늘로 날짜를 잡았습니다.”

이태석 신부를 ‘수단의 슈바이처’로 부르지 말아달라는 당부는 이날 심포지엄의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돈 보스코 정신과 이태석 신부’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발표를 한 백광현 신부는 ‘살레시오 수도회 사제 이태석’의 삶을 회고한 뒤 “마지막으로 함께 생각해보고 규명해보고 싶은 문제가 있다”며 그 얘기를 꺼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가 흔히 ‘인술(仁術)의 상징’으로 회자되는 의사였을 뿐 아니라 기독교 신학자이자 목사였고, 또 수준급의 파이프오르간 연주자일 정도로 다재다능하고 위대한 인물임은 분명하다. 그런 뜻에서 역시 사제이자 의사였으며 음악적 재능까지 갖췄던 이태석 신부를 ‘수단의 슈바이처’라고 부를 수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차이 또한 잊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백 신부는 “영국의 가톨릭헤럴드라는 잡지는 이태석 신부에 관한 기사를 다루면서 그를 ‘수단의 슈바이처’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슈바이처가 위대한 사람이었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상관과 같은’ 태도를 취한 반면 이태석 신부는 친구로 다가간 사람이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백 신부는 이태석 신부가 1991년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한 이듬해부터 10년간 함께 동문수학한 동료. 백 신부는 “이태석 신부가 살레시오회의 사제요 선교사가 되면서 가장 닮고 싶어 했던 유일한 모델은 보스코 성인이었다”면서 “그에게 가장 영예로운 이름은 ‘톤즈의 돈 보스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시 남 신부에게 물었다.

―보스코 성인의 삶은 어땠습니까? 자료를 찾아보니 일생을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위해 살았고, 특히 오늘날 ‘예방교육(Preventive System)’으로 알려진 교육 방법의 실천에 힘썼다고 돼있습니다만….

“자료를 봤으면 아시겠지만 보스코 성인이 주창한 예방교육의 세 축은 이성, 종교, 그리고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건 아이들의 모습이 아니고 교육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성은 아이들과 인간 대 인간, 인격 대 인격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종교는 아이들의 인격이 왜 나하고 같은 것인가를 설명해 줍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천부인권이라는 말처럼 하느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이죠. 아이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존엄성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면 아이들도 깨닫게 됩니다.”

―보스코 성인의 삶을 추구하는 살레시오 사제들에겐 가능할지 모르지만 현실의 교육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길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성직자라서 더 수월할지 모르지만 교사의 소명의식을 느끼시는 분들은 첫째 조건을 그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그 가장 구체적인 표현이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걸 아모레볼레차(Amorevolezza)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번역하기 좀 어렵습니다. 굳이 번역하자면 ‘감응하는 사랑’이라고 할까. 아이들이 교육자로부터 존중받는 느낌을 갖게 되면 감응이 이뤄집니다. 강압적이면 곤란합니다. 아이들이 감응하면 자기 얘기를 보태면서 변화합니다. 그게 보스코 성인의 예방교육인데 그걸 교실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가자는 겁니다.”

‘아모레볼레차’는 살레시오회 예방교육의 핵심이다. 남 신부는 우리말로 번역하기 쉽지 않다고 했지만 장면 박사의 4남으로 천주교 춘천교구장을 지낸 장익 신부는 언젠가 ‘자애(慈愛)’라는 말로 설명했다고 한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이탈리아어 등에 능통했던 장 신부는 “아모레볼레차는 어떤 대상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 합쳐진 말인데 자애가 가장 가깝다”고 했다는 것이다. 자(慈)는 실 사(絲)와 마음 심(心)으로 이뤄져 있다. 絲는 나비 애벌레를 담은 누에고치가 사랑스럽게 매달려 있는 모습이고, 心은 바로 그렇게 매달린 누에고치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뜻풀이다. “청소년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 족하지 않습니다. 청소년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알 만큼 사랑해야 합니다”라는 살레시오 수도회의 최고명제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웃으며) 체벌은 확실히 반대하시겠군요. 그런데 보스코 성인이 음악과 게임, 그리고 마술까지 예방교육의 방법으로 활용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눈높이를 맞춘다고 할까, 아이들의 주의를 끄는 게 중요하니까요. 보스코 성인은 악단을 만들어 마을을 돌아다니며 연주도 하고 줄타기 연습까지 했습니다. 마술하는 사람과 경쟁해서 이기기도 하고….”

―보스코 성인은 장자크 루소와 볼테르를 ‘사악한 지도자 2인’이라고까지 불렀던데 역시 교육이념 때문이었습니까.

“(곁에 있던 백광현 신부가 대답했다) 당시 배경도 있지만 두 사람은 교육에서 종교를 추방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살레시오회의 교육 목표는 정직한 시민, 착한 신자가 되도록 인도하는 것인데 착한 신자를 빼버린 거죠. 보스코 성인은 당시 도전도 많이 받았습니다.”

―좀 조심스러운 질문인데 이태석 신부를 복자(福者)나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르게 만들자는 움직임도 있습니까.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있겠지만 의도를 가지고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만들어 달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죽음 이후에 그 사람의 삶이 신자들은 물론이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봐야 합니다. 그런 변화들의 흐름이 이어지면….” 남 신부는 말을 아꼈다.

―저는 종교도 없고 신에 관해서는 불가지론자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마치 톤즈의 아이들을 위해 예비된 듯한 이태석 신부의 맞춤형 재능을 보면서 ‘혹시 어떤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이태석 신부가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남 신부의 답변도 그랬겠지만, 사실 시성(諡聖), 시복(諡福)에 관한 기자의 질문은 실제 가능성을 묻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를 복자나 성인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이 번지다 보면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변화의 흐름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아모레볼레차 같은….

 

                                                                                                                                                                             김창혁 전문 기자 chang@donga.com 

 


■ 돈 보스코 성인(1815∼1888)과 살레시오 수도회

 

한국천주교살레시오회는 ‘톤즈의 돈 보스코-이태석 신부의 삶과 영성’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준비하면서 특별한 걸개그림을 선보였다. 예수와 돈 보스코 성인이 그려져 있는 뒷배경은 이탈리아 돈 보스코 생가에 세워진 성당 벽화이고, 이태석 신부가 톤즈의 아이와 함께 있는 그림은 강현주 화백이 그린 ‘눈물’이 라는 작품의 일부다. 서정관 수사 제공

 

돈 보스코 성인은 이태석 신부가 소속된 살레시오수도회의 창립자다. 살레시오수도회는 예수회, 프란치스코회, 베네딕트회와 함께 가톨릭의 4대 수도회로 꼽힌다. 수도회의 카리스마(사명)는 각기 다른데 가장 큰 수도회인 예수회는 성인 교육, 프란치스코회는 ‘빈자(貧者)들과 함께하는 삶’을 카리스마로 두고 있다.

살레시오수도회의 카리스마는 불우청소년 교육.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 인근에서 태어난 돈 보스코는 산업혁명기에 가난하고 버려진 청소년들의 교육과 권익보호에 일생을 바쳤다. 1929년 복자로 시복됐고, 1934년 ‘청소년의 아버지요 교사’라는 칭호와 함께 성인으로 시성됐다.

징벌(punishment)보다 사랑(love)을 강조하는 그의 교육이념은 ‘예방교육’으로 유명하다. 그는 예방교육의 실천을 위해 1859년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함께 살레시오수도회를 설립했다. 살레시오회에는 현재 전 세계 130개 나라에서 1만6000여 명의 남자 수도자(신부와 수사)와 1만5000여 명의 수녀들이 돈 보스코 정신에 따라 청소년 교육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54년에 시작됐으며, 1999년에 정식 관구로 승격됐다. 현재 130여 명의 수도자와 300여 명의 수녀가 있다.

이태석 신부가 있던 톤즈의 학교와 병원 이름도 돈보스코다. 이태석 신부는 2000년 돈 보스코 성인이 선종한 토리노 발도코의 오라토리오(본당), 바로 그 방에서 종신서원을 했다. 백광현 신부는 “그는 무릎을 꿇고 평생토록 ‘돈 보스코의 아들’로 살겠다는 결심을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