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
商道를 다시 생각한다
요즘 중국의 지상 과제는 ‘샤오캉(소강·小康)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소강은 중국의 사상가인 공자가 편찬한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로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되는 상태를 뜻한다. 중국 공산당은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사회를 꿈꿨으나 실현 불가능한 목표임을 인정하고 모든 국민에게 어느 정도 먹고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중국에 신흥 부유층이 늘어나면서 빈부 격차가 확대되고 사회 불안이 커지는 상황을 고려한 대책이기도 하다.
‘큰 이익’보다 신용 중시한 옛 상인
저소득층이라도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배려하는 나라로 미국이 있다. 미국 곳곳에 자리 잡은 대형마트에는 전체적인 소득 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생필품들로 가득 차 있다. 미국 생활에 필수인 자동차를 움직이기 위한 휘발유값도 그동안 많이 올랐다지만 한국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일본의 대중식당에서 직장인들이 점심 한 끼를 해결하려면 500엔(약 6700원) 안팎의 가격으로도 가능하다. 일본의 국민소득과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싼 셈이다.
기본적인 생활 보장과 직결돼 있는 우리의 생활물가는 높은 편이다. 싱가포르에서 거주했던 한 한국인이 귀국한 뒤 한국 마트에서 10만 원어치 장을 봤다. 카트에 실어놓고 보니 싱가포르에서 같은 금액으로 살 수 있는 분량의 절반에 불과했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국민소득은 4만3000달러로 한국의 2배가 넘었다. 최근 국내 생활물가는 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달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발표한 한국의 물가 분야 경쟁력이 조사 대상 59개국 가운데 52위로 나타난 것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1만 원짜리 냉면의 등장은 서민들이 직면한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이 내세우는 샤오캉 사회가 중국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높은 한국에서 과연 실현되고 있는지 장담하기 어렵다.
한국의 높은 물가는 세금, 정부의 정책 실패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지만 그 한 축으로 공급자의 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소비자를 상대로 무조건 이윤을 뽑아내면 된다는 풍토가 어느새 뿌리내려 있다. 심지어 대학조차도 수요자인 학생들을 상대로 등록금을 올리는 편한 방식으로 운영비용을 조달해 왔다. 이익을 향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집단이 상인(商人)이라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도 과도한 이윤을 자제했던 상도(商道)나 상업윤리는 분명히 존재했다.
생활물가苦 덜어주기 협조해야
일본의 경영이념으로 요즘도 자주 오르내리는 것이 ‘삼위일체’ 정신이다. 18세기 오미 지역 상인이었던 나카무라 지헤에가 강조한 이 정신은 ‘상거래는 파는 사람, 사는 사람, 세상 사람 모두에게 다 좋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삼베를 팔아 큰돈을 번 나카무라는 “단번에 많은 이익을 바라지 말고 먼저 고객을 생각하는 장사를 해야 한다”는 유훈을 남겼다.
한국의 상도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판매했던 보부상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1851년 정해 놓은 14개조의 규율에는 상거래 시 비리를 저지르거나 강매를 하면 동료들이 자체적으로 태형 30대를 가하도록 돼 있었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공통된 신분 체계를 갖고 있었다. 이 체계 속에서 상인들은 가장 낮은 계급이었다. 옛 상인들이 나름대로 상도를 지키려고 한 것은 신분의 한계 속에서 더 길게 내다보고 지속가능한 활동을 펴나가기 위한 지혜이기도 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오늘날의 대기업 등은 반대로 우월적 위치에 있다. 그만큼 상인 스스로 상도에서 벗어나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다.
2000년 최인호 씨의 소설 ‘상도’가 선풍을 일으켰다. 너도나도 이익 챙기기에만 골몰하는 세태 속에서 독자들은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1779∼1855)이 상도를 추구하는 모습에 매료됐다. 임상옥이 갖고 있었다는 계영배(술이 어느 정도 채워지면 옆으로 흘러내리게 돼 있는 술잔·절제를 의미함)는 화제가 됐다. 16세기를 전후해 국제무역을 장악했던 네덜란드는 역사상 가장 풍요했던 나라로 꼽혔다. 당시 네덜란드 상인들의 집에는 한 귀퉁이에 썩은 과일이나 생선을 그려 넣은 정물화를 걸어놓는 것이 유행이었다. 상인들은 그림을 보면서 ‘소멸을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되새기곤 했다. 치솟는 생활물가 속에서 오늘의 상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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