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사랑 고백하는 하느님 예언자들이란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점쟁이나 미래를 미리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하느님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들이다. 예언자(Prophetes)는 하느님 대변인이다. 성경에서 하느님 체험을 전하는 예언자들을 시대별로 찾아보자. 1) 엘리야 솔로몬 왕 이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린다. 북쪽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아합이 역겨운 죄를 거듭 짓는 가운데 엘리야라는 예언자가 등장한다. 엘리야 예언자의 가장 큰 활약은 바알 예언자 450명과 대결이다(1열왕 18장). 이 대결의 승리로 엘리야는 하느님이야말로 참으로 주님이심을 백성들에게 알린다. 바알 예언자의 후원자였던 이제벨 왕비로부터 도망 다니던 엘리야가 하느님을 만나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어서 우리가 묵상할 것이 많다. 엘리야가 하느님을 만날 때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바위를 부수고, 지진과 불이 지나간 다음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폭풍, 지진, 불은 하느님의 부정적ㆍ파괴적 활동을, 조용하고 부드러운 바람은 하느님의 창조적ㆍ구원적 활동을 뜻한다.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하느님은 조용한 일상사 안에서 만날 수 있는 분이라는 뜻이다. 2) 엘리사 밭을 갈고 있다가 엘리야의 부름을 받는다. 부모님께 작별인사를 하고, 소를 잡아 제사를 지낸 다음 엘리야를 따른다(1열왕 19,19-21). 복음에서도 예수님이 어느 청년을 부른다. 한 청년은 아버지 장례 핑계를 댄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죽은 자의 장례는 죽은 자에게 맡기라." 그리고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핑계 대는 청년에게 말한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엘리사는 또 이스라엘을 침략하려는 아람 임금의 군인들 눈을 멀게 하여 사로잡은 다음 대접해 보내서 다시는 침략하지 않도록 했다(2열왕 6,8-23). 이는 오직 사랑만이 원수를 친구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려준다. 3) 아모스 남쪽 유다 왕국 백성인 아모스는 북쪽 이스라엘로 가서 설교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가 이스라엘로 간 것은 일치의 표지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온 민족이 하느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모스의 하느님은 불굴의 사랑과 정열을 지니신 하느님이다. 아모스를 통해, 벌을 내리면서도 동시에 구원을 베풀기 원하며 회개를 호소하는 하느님 사랑을 읽을 수 있다. 4) 호세아 호세아는 자신의 삶을 통해 하느님 사랑을 보여준 예언자다. 그는 하느님 말씀에 따라 창녀 고메르와 결혼한다. 창녀와 결혼하고 또 그가 부정을 저질렀음에도 다시 아내로 맞아들이는 일은 누가 봐도 어리석은 행동이다. 호세아는 그런 행동을 통해 당신 백성에 대한 주님 사랑 역시 그런 놀라온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호세아는 바보 같은 사랑의 대명사다. 호세아의 사랑은 끊임없이 배신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또 끊임없이 용서하는 하느님 사랑을 대변한다. 5) 이사야 엄청난 사건들을 계획하고 주재하는 주인공은 바로 주님이라는 것을 보다 분명히 한 예언자가 이사야다. 이사야는 모든 민족에 대한 주권을 지닌 하느님은 당신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모든 이들을 보호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유일신 사상을 주창한 것이다. 이사야는 야훼 하느님이 모든 민족은 물론 역사와 창조를 지배하는 분이라고 했다. 또 주님은 과거의 하느님인 동시에 현재의 하느님이며, 또 앞으로 올 모든 세대의 하느님임을 선언했다. 6) 예레미야 모든 민족들 움직임 속에서 주님 손길을 볼 수 있다는 사상은 예레미야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인에게 바빌론에 정착해 가정을 꾸리라고 권고한 것은 야훼가 바빌론에도 현존하고 계심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이는 사람들이 야훼를 진심으로 찾기만 하면 어디에서나 그분을 발견할 수 있다는 신앙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언자들에 의해 하느님이 온 세상에 한 분뿐인 유일신임을 이해하게 된다. 7) 요나 '하느님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하느님이다'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요나는 이방인 니네베 사람들에게 가서 회개를 촉구하라는 하느님 뜻을 거스르고 달아난다. 요나는 물에 던져져 큰 물고기 뱃속을 통해 니네베에 도착하고도 하느님께서 니네베 사람들을 향한 재앙을 거둔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요나서의 절정은 시들어버린 아주까리 나무를 놓고 벌어진 하느님과 대화다. 하느님은 요나를 설득하신다. "너는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은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그렇다면 내가 '보기 좋게' 창조한 저 많은 니네베 사람들을 어찌 동정하지 않겠느냐?" 이 말을 들은 요나는 비로소 야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이방인 니네베 사람들에게도 자애로운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된다.
하느님은 예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 사랑을 전하셨다. 또 이스라엘을 통해 세상 모든 민족에 대한 당신 사랑을 전하신다. 하느님은 사도를 통해 교회를 세웠고, 사도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신다. 주님께서는 교회 구성원인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하느님은 여전히 자애로우시다. 예언자 요나를 설득하시는 하느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리=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