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음악

즐거운 희극 오페라의 세계

namsarang 2011. 11. 11. 20:46

오페라 극장에서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큰 소리로 웃어도 될까요? 답은 ‘그렇다’입니다. 가끔은 비극 오페라를 보다가도 키득키득 웃음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무대 위 주인공이 자기 가슴에 칼을 꽂고 비장하게 죽어가는 상황인데, 죽는 연기가 영 어색할 때도 있고 심지어는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갔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 기어오기도 하니까요. 그래도 이런 경우엔 애써 웃음을 참는 게 예의겠지요. 하지만 희극 오페라를 볼 때는 마음껏 소리 내어 웃어도 됩니다. 어른들은 연주를 방해할까봐 쿡쿡 소리죽여 웃지만 어린이들은 배를 잡고 깔깔 웃어대는데요, 객석의 요란한 웃음소리를 들으면 무대 위 가수들도 사실 더 신명이 난답니다.

 

‘희극 오페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로시니(Gioacchino Rossini, 1792-1868)라는 이름, 그리고 흐뭇한 표정으로 ‘함포고복(含哺鼓腹 : 잔뜩 먹고 배를 두드림)’하는 배불뚝이 로시니의 초상입니다. 로시니는 열여덟 살에 볼로냐 음악원을 졸업하자마자 [비단 사다리]를 비롯한 5편의 짧은 소극(笑劇, farsa) 오페라를 차례로 발표했고, 그런 음악적 실험을 토대로 본격적인 희극 오페라(opera buffa)를 세상에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세빌리아의 이발사], [신데렐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등은 대표적인 로시니 희극들입니다.

 

 


막간극으로 출발한 희극 오페라의 계보

그러나 로시니가 희극 오페라를 처음 만든 건 아닙니다. 희극 오페라의 기원은 바로크 시대 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7세기 이탈리아에 상업적인 오페라 극장들이 생겨나면서 극장을 찾는 평민 관객 수가 점차 늘어가자, 극장 측에서도 귀족뿐 아니라 평민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신화와 영웅담을 소재로 삼아 귀족계급을 찬양하는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 정가극)를 평민들이 지루해하자, 극장 측에서는 평범한 시민계급의 일상을 소재로 한 ‘인테르메초(막간극. Intermezzo)’를 만들어 본극 막간에 공연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테르메초 작품들은 당대의 사회상을 빗대 관객에게서 폭소를 이끌어냈습니다. 교역이 활발해지고 장사로 돈을 번 새로운 시민계급이 사회의 주역이 되는 시대였지요. 물자가 풍성해지고 남편들이 바빠지자 ‘쇼핑 중독증’에 걸린 아내들이 늘어났고, 결국 남편이 장사해서 모은 재산을 아내가 사치하느라 다 써버리는 경우들이 생겼답니다. 그래서 돈 많이 번 상인들은 파산이 두려워 아예 결혼하지 않고 노총각으로 늙어가는 사례를 자주 볼 수 있었지요. 작곡가 페르골레시(Giovanni Battista Pergolesi, 1710-1736)는 이런 세태를 반영한 대표적인 막간극 [마님이 된 하녀 La serva padr ona](1733)를 발표해 오페라 극장을 웃음소리로 채웠습니다. 이런 막간극은 본극보다 더 인기를 끌어, 나중에는 ‘오페라 부파(opera buffa: 희극 오페라)’라는 장르로 독립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이 ‘구두쇠 노총각’ 소재는 19세기에 작곡된 도니체티의 [돈 파스콸레] 같은 작품에서도 더욱 익살스럽고 세련된 형태로 나타납니다.


19세기 신문에 실린 로시니의 캐리커쳐. 로시니는 희극 호페라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막간극에서 출발한 희극 오페라의 계보는 모차르트-로시니-도니체티-오펜바흐(오페레타) 등으로 이어집니다. 계몽사상과 프랑스 대혁명기의 자유주의 사상은 오페라에도 영향을 끼쳐 소재의 변화를 가져오게 했지요. 지배계급이 금지한 보마르셰의 혁명적인 희곡 [피가로의 결혼]을 토대로 모차르트는 본격 희극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 독일어 징슈필인 [후궁 탈출]과 이탈리아어로 쓴 [코지 판 투테]도 모차르트의 대표적인 오페라 부파입니다. [돈 조반니]도 희극에 가깝지만, 결투로 인한 살인이 일어나고 주인공이 지옥불에 떨어져 죽는 등 비극적이고 무거운 요소들이 들어 있어 순수한 오페라 부파로 분류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하인 레포렐로가 부르는 ‘카탈로그의 노래’(Madamina...)는 가사도 음악도 희극적 효과의 최고봉입니다.

 

모차르트와 동시대 작곡가들인 파이지엘로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로시니 이전에 작곡), 치마로사의 [비밀결혼], 살리에리의 [팔스타프] 등을 들어보면 음악형식 면에서 거의 모차르트와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그들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파격으로 오늘날까지 사랑 받는 걸작들을 탄생시켰습니다. 당대 작곡가들이 그저 성악을 따라가는 반주기능으로 오케스트라를 사용한 것과는 달리 모차르트는 부분적으로는 기악부가 성악부를 이끌며 성악부의 멜로디를 예고하도록 했고, 로시니는 이런 획기적인 시도에서 많은 것을 배워 자신의 희극 오페라에 적용했습니다.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1막 피날레 장면. 배우들의 코믹한 표정과 몸동작이 웃음을 자아낸다.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로시니의 걸작 희극 오페라


로시니는 18세기 오페라 부파를 19세기에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린 놀라운 작곡가입니다. 모차르트 희극은 관객을 미소 짓게 하지만 로시니의 희극은 박장대소하게 만듭니다. 로시니가 음악으로 희극적 효과를 만들어 내고 관객을 웃기는 데는 다음과 같은 필수적인 테크닉들이 사용되었답니다.

 

주인공의 음역과 음색 : 능청스런 바리톤 & 당찬 메조소프라노
아리아 ‘나는 마을의 해결사 Largo al factotum’라는 씩씩하고 명랑한 노래를 들어보셨을 거예요.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바리톤 주인공 피가로가 부르는 노래랍니다. 오페라에서 테너는 일반적으로 젊음의 패기와 열정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고귀한 신분이나 품성을 지닌 주인공에게 테너 역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죠. 이발사 피가로 역시 젊고 패기에 넘치긴 하지만 돈을 아주 좋아하고 돈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시민사회의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능청스런 음색의 바리톤에게 이 역할을 맡깁니다. 기지와 계략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운명을 개척해가는 로시니 희극의 여주인공들(로지나, 안젤리나, 이사벨라)은 대개 메조소프라노 배역입니다. 소프라노는 연약하고 청순가련한 비극의 여주인공에게 더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장면의 피날레는 크레센도(Crescendo)로!  
로시니 희극 오페라에서는 한 막 또는 주요 장의 피날레에 등장인물 전원이 총출동해 유명한 ‘로시니 크레센도’를 들려줍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노래하다가 2중창, 3중창, 6중창으로 발전하고 합창까지 가세해 음량이 점점 커지는 방식을 말합니다. 로시니는 모차르트 희극 오페라에서 이런 방식을 배워 더욱 재미있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 관객을 포복절도 시키는 파를란도(Parlando)
로시니의 [신데렐라]에서 신데렐라의 자매들은 왕자를 맞이하느라 요란하게 치장을 하며 신데렐라를 불러댑니다. “신데렐라, 이리 와 봐!(Cenerentola, qua!) 내 드레스, 내 구두, 내 모자...”하고 정신없이 외쳐대는 이 부분은 엄청나게 빠른 템포로 노래가 진행되기 때문에 듣는 사람도 숨이 찰 지경입니다. 마치 대단한 래퍼처럼 속사포로 쏘아대는 말들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해도, 그 템포만으로도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것이 ‘파를란도’입니다. 로시니는 고음역, 저음역을 가리지 않고 이렇게 대단히 빠른 템포로 노래 부르는 장면들을 집어넣었는데, 특히 바리톤이나 베이스가 이처럼 빠른 속도로 노래하면 희극적 효과는 더욱 커집니다.  

 

 

 

인간의 욕심을 비웃고 벌주는 희극

희극의 본질은 ‘시정(correction)’, 그러니까 ‘잘못된 것을 고치는 데’ 있습니다. 이 말은 일반적인 상식의 기준에서 볼 때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행위를 고친다는 의미입니다. 이를테면 인간의 허영심, 현학적인 태도, 지나친 욕심 따위를 무대 위에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이고는 이를 공개적으로 비웃어 줌으로써 벌을 주는 것입니다. 특히 돈이나 색(色)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희극이 단골로 공격하고 비웃는 대상이 됩니다.

 

로시니의 오페라 [신데렐라]의 한 장면. 로시니는 '로시니 크레센도''파를란도'와 같은 기법으로 희극적 효과를 증폭시켰다.

 

 

비극의 효과는 관객이 극에 감정을 이입할 때 일어나지만, 희극의 효과는 반대로 관객이 극에 객관적 거리를 취할 때 커집니다. [라 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 비올레타가 죽어가면서 연인 알프레도와 재회할 때 관객은 비올레타 또는 알프레도의 안타깝고 서글픈 심정으로 극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늙은 후견인 바르톨로가 어린 처녀 로지나와 결혼하려는 욕심을 보일 때 관객은 바르톨로나 로지나의 입장이 되어 공감하고 감동 받는 것이 아니라, 바르톨로를 마음속으로 조롱하고 비난하며 사태의 진행을 냉정하게 지켜봅니다. 비극이 감정을 정화시킨다면 희극은 우리의 이성(理性)을 일깨웁니다. 극에 등장하는 욕심 많고 파렴치한 인물을 비웃다가 결국은 나 자신을 돌아보고 비웃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희극입니다. ‘웃음 이론’으로 유명한 철학자 베르그송 역시 “희극은 지성에 호소한다”고 말했습니다. 프랑스 작곡가 오펜바흐의 [지옥의 오르페우스], [아름다운 헬레네]같은 그리스 신화 소재 오페레타들은 지성에 호소하는 패러디 희극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비극 오페라 작곡가로 유명한 베르디와 푸치니도 각각 말년에 걸작 희극을 한 편씩 남겼답니다. [팔스타프]와 [자니 스키키]가 그들입니다. 신나는 템포와 리듬으로 몸과 마음에 에너지를 채워주는 희극 오페라와 한 번 친해져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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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숙 /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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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 제공 소니 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