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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대학생 눈에 비친 '아슬아슬한 나라 대한민국'

namsarang 2012. 6. 8. 21:30

[사설]

탈북 대학생 눈에 비친 '아슬아슬한 나라 대한민국'

 

조선일보/입력 : 2012.06.07 23:03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으로부터 "입 닥치고 살아, 이 변절자들아"라는 폭언을 들었던 탈북 대학생 백요셉씨가 탈북에서 한국 정착까지 6년 과정을 기록한 일기장 14권엔 그의 눈에 비친 '이상하고 아슬아슬한 나라, 대한민국'의 모습이 담겨 있다. 백씨는 19세 때인 2003년 처음 두만강을 건너 탈북을 시도하다 세 차례나 붙잡혀 북송(北送)을 당하고서 2008년 10월 기어이 한국에 들어온 젊은이다.

백씨가 대학에 입학해 받은 첫 수업에서 담당 교수는 자기가 북한 문제 전문가라며 "북한에 관한 가장 확실한 정보는 노동신문이고, 가장 못 믿을 것은 탈북자"라 했다 한다. 백씨는 "이 말을 듣는 순간 피가 끓었다"고 했다. 노동신문은 전체 6면 중 2, 3면을 최고 지도자 동정(動靜)을 주민에게 전달하는 데 쓰는 김씨 일가의 선전 도구다. 6월 7일자는 2면을 증면(增面)해 8개 면 중 7개 면을 김정은 말과 몸짓을 전하는 데 할애했다. 명색이 북한 전문가라는 교수가 노동신문 기사는 믿을 만하고, 목숨 걸고 탈출해 북의 진짜 모습을 전하는 탈북자 말은 못 믿겠다고 했을 때 백씨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문제의 교수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에 대해선 "자기(북한)네 앞바다에서 포탄 쏴대는데, 이런 ×××들 하고 쏜 것 아니냐. 응당한 징벌"이라 설명했다 한다. 백씨는 '이게 대한민국인가. 악몽(惡夢)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자기 볼을 꼬집어 봤을 것이다. 이런 일이 어디 백씨가 다니는 대학뿐이며, 그 교수뿐이겠는가.

백씨가 탈북을 시도하던 2005년 8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 한국 대사관 직원은 "대한민국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나라가 아니다. 중국어를 알면 중국에 가서 살고, 아니면 북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한다. 백씨는 그날 일기에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고 썼다. 그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우리는 미국과 생각이 다르다"면서 북한은 핵(核)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의장으로서 외교·안보를 총괄하던 통일부 장관이 이런 말을 하던 판이니 외교 현장 실무자들이 탈북자 처리에 난감해했을 만도 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대한민국 외교관이, 이미 세 차례 북송당한 적이 있고 다시 북으로 끌려가면 참형을 각오해야 하는 백씨와 같은 탈북자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건 그때 대한민국이 정상(正常)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어이없는 대한민국 모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왕재산 간첩 사건으로 징역 9년을 선고받은 총책 김덕용은 2008년 5월에,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인천 지역책 임모씨는 2003년 7월에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돼 보상금도 받았다. 그 당시 두 사람은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간첩 활동에 열심이었다.

백씨 같은 탈북자 2만명은 지금 억장이 무너지고 더 무시무시한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북한을 지옥으로 만든 김일성 3대를 떠받들어 온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국회의사당 안을 활보하고 있는 장면이다. 집권당을 노리는 제1 야당의 대표가 되겠다는 사람은 민족 반역자 김씨 3대(代)를 받드는 조무래기 주사파의 국회의원 자격을 심사하는 것은 "악질적인 범죄행위"라고 핏대를 세우고 있다. 생지옥을 탈출하려다 세 번 실패하고 네 번째 만에 성공해 대한민국 국민이 된 백씨가 이 위태위태한 대한민국 모습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