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2012]
제자 메달에 입 맞추는 감독… 혼자 따는 게 아닌 올림픽金
런던=강호철 기자
입력 : 2012.08.10 03:09 | 수정 : 2012.08.10 18:30
금메달 김현우·양학선·진종오·송대남 키운 감독들
진종오 방장이었던 김선일 감독 - 10년 전 대표팀서 동고동락…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이김현우 키운 안한봉 감독 - 요령 부리면 운동장 100바퀴 "모든 걸 버려라" 마음의 매질
양학선 탈선 막은 오상봉 감독 - 잠적하면 전국 뒤져 데려와 런던 간 제자에 카톡 상담도
송대남 은사 겸 동서 정훈 감독 - "동서이지만 죽도록 혼냈다" '올림픽 2번 좌절' 극복 시켜
8일(한국 시각) 새벽 영국의 엑셀 런던 노스아레나에서 열린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남자 66㎏급 결승전. 한국의 김현우(24)가 헝가리 타마스 로린츠를 세트 스코어 2대0으로 물리치자 초조하게 경기를 지켜보던 대표팀 안한봉(44·삼성생명 감독) 코치도 자리를 박차고 매트로 올라가서 '막춤'을 덩실덩실 췄다. 그러곤 소속팀 제자인 김현우를 번쩍 안아 올렸다. 김현우가 감사의 큰절을 하자 자신도 어린 제자에게 맞절을 했다. 금메달의 영광은 선수에게 간다. 하지만 그 선수를 키운 스승들의 보이지 않는 힘이 없었더라면 금메달의 환호성이 런던 하늘에 울려 퍼질 수 있었을까.
◇'미친 체력'의 조련사 안한봉 감독
1992년 바르셀로나 금메달리스트인 안한봉 삼성생명 감독은 김현우가 강원고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삼성생명으로 스카우트했다. 안 감독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노 골드'의 수모를 당한 한국 레슬링의 자존심을 세울 '비장의 무기'로 김현우를 점찍었다. "세계 정상에 서려면 '미친 체력'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안 감독은 선수들이 매트에서 토할 정도로 다그치는 스파르타 훈련방식으로 유명했다.
- 지난달 28일 런던올림픽 사격 남자 10m 공기 권총에서 진종오가 한국 선수단의 첫 금메달을 따내자 김선일 대표팀 코치(오른쪽)가 금메달에 입을 맞추며 기뻐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김현우에게도 고비는 있었다. 지난 5월 매트에서 요령을 부리다 안 감독에게 걸렸다. 안 감독은 김현우에게 태릉선수촌 운동장을 100바퀴 뛰라고 지시했다. 쓰러졌다 또 일어나서 뛰는 일을 반복하길 네 시간째. 보다 못한 박장순(44) 삼성생명 자유형 종목 감독이 김현우를 말리고는 데려왔다. 안 감독은 김현우에게 "올림픽 금메달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다. 하늘을 감동시키기 위해선 모든 걸 버려야 한다"고 꾸짖었다. 김현우는 "그때 마음을 다잡은 덕분에 금메달의 영광이 있었다"고 했다.
◇양학선의 탈선을 막은 오상봉 감독
남자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건 양학선은 광주체중에서 당시 감독이던 오상봉(46) 현 광주체고 감독의 눈에 띄었다. 양학선은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돈을 벌겠다고 여러 번 잠적했다. 오 감독은 양학선이 잠적하자 다른 팀 감독과의 비상연락망을 통해 전국적인 '지명 수배'에 나선 끝에 일주일 만에 다시 학교로 데려왔다. 수시로 집에 데려다 먹이고 재우며 아들처럼 돌봤다.
양학선의 독보적 기술 '양1'은 오 감독이 지도한 광주체고 시절부터 꾸준히 연습해 오던 것이다. 양학선은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런던 현지에 가서도 오 감독과 끊임없이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착지를 개선하는 방법을 상의했다.
◇'방졸'을 금메달로 키운 김선일 감독
김선일(56·대구백화점 사격단 감독) 대표팀 남자 권총 코치와 올림픽 사격 2관왕 진종오는 10년 전만 해도 '방장과 방졸'사이였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같은 방을 썼다. 당시 태극 마크 '신참'이던 진종오는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 김선일로부터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진종오는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확정한 뒤 김선일 감독과 가장 먼저 진하게 포옹했다. 진종오는 "김 감독님과 서로 믿음 속에 함께해 온 게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고 했고, 김 감독은 "나와 종오 사이엔 말이 필요 없다. 서로 눈빛만 봐도 안다. 알아서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냥 지켜보기만 한다"며 후배를 대견스러워했다.
- 연합뉴스, 오상봉 감독 제공,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송대남의 은사 겸 동서 정훈 감독
유도 남자 90㎏급에서 깜짝 금메달을 메친 송대남은 정훈 대표팀 감독과 얼싸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 뒤 큰절까지 올렸다. 경기 종료 1분을 남겨두고 퇴장을 당했던 정 감독은 금메달이 확정되자 멀리서 달려와 송대남을 끌어안았다. 정 감독에게 송대남은 제자이자 막내 동서였다.
송대남은 정훈 감독의 막내 처제와 연애 3개월 만에 결혼했다. 그의 성실성을 눈여겨본 정훈 감독이 적극적으로 만남을 주선했다. 송대남은 두 차례 올림픽 출전 좌절과 무릎 수술로 유도를 포기할 생각까지 했었다.
정훈 감독은 벼랑까지 몰아넣었다. 정 감독은 "동서지간이지만 선수촌에서 정말 나한테 욕도 많이 먹고 혼도 많이 났다"며 "매일 밤 11~12시까지 죽으라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영광의 주인공 뒤엔 조용히 그를 뒷바라지해 온 사람들이 있다. 양궁 남자 개인전 금메달리스트인 오진혁은 장영술(52) 대표팀 총감독, 여자 개인전 금을 따낸 기보배는 광주여대 양궁부 김성은(38) 감독이 어려울 때마다 흔들리는 자신들을 다잡아 준 데 대한 고마움을 나타냈다. 금메달은 한 개지만 그 메달엔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함께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