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교회
|
▲ 라오디케이아 유적터. 리길재 기자 |
지금은 폐허인 라오디케이아는 아시리아 제국의 대도시였으며 요한묵시록에 등장하는 소아시아 7개 교회 중 하나다. 라오디케이아는 귀 연고와 안약을 제조하는 데 쓰이는 프러지아 분말이 생산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라오디케이아는 기원전 3세기 중엽 시리아의 셀레우코스왕국의 안티오코스 2세가 건설했는데 아내 라오디케의 이름을 따서 라오디케이아로 불렀다고 한다. 이곳은 예로부터 상업 요충지로 금융, 의료, 의류의 중심이었다. 기원전 133년 로마의 속주가 됐고 순회재판 도시였다. 그런데 수차례 지진으로 도시는 초토화됐다. 현재의 유적지도 지진으로 모두 땅속으로 함몰돼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기원후 17년에 있었던 대지진으로 라오디케이아가 모두 파괴되자 로마에서 도와주고자 했다. 그러나 라오디케이아는 이를 거절하고 순수 라오디케이아인들의 힘만으로 도시를 재건했다.
라오디케이아는 의학의 중심으로 의료의 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고 라오디케이아 동전에 새길 만큼 중요시됐다. 지금은 폐허지만 1만 5000석이 넘는 공연장은 엄청난 규모의 신전과 거리의 화려함을 잘 드러낸다. 이런 부의 근본이 된 것은 물론 무역과 통신이었지만 기간산업인 양모와 목화 또한 주축이 됐다. 이 지역의 양모는 광택이 나는 검은색 양모로 가격이 높고 인기가 좋았다. 또 라오디케이아는 의학이 발전했었다. 이곳의 눈병 치료약은 매우 뛰어나 많은 이들이 찾았는데 이 안약 때문에 라오디케이아는 의료 도시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특히 귓병 치료약과 안약은 여러 지역으로 수출됐다.
이렇듯 엄청난 부를 가진 라오디케이아에는 많은 유다인이 살았다. 그래서 종교적 핍박이 그렇게 심하지도 않고 경제적 궁핍도 없는 상황에서 선교 활동이 이뤄졌다. 하지만 경제적인 부유함은 사람들을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해 하느님의 질타를 받게 한다.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 유일하게 책망만 있고 칭찬이 없는 교회다.
라오디케이아는 물 사정이 좋지 않아 9km 떨어진 히에라폴리스의 뜨거운 물과 콜로새의 찬물을 끌어다 사용했다. 두 곳에서 온 물이 라오디케이아까지 오면서 미지근한 물이 됐다고 한다. 라오디케이아 신자들에게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하다”고 책망한 말씀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 3,15-16) 이어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라”는 말씀은 라오디케이아의 유명한 안약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3차 선교여행(53~58년) 중 27개월간 머물던 에페소에서 제자 에파프라스를 시켜 에페소 동쪽에 위치한 콜로새와 라오디케이아, 히에라폴리스에 교회를 세웠다.(콜로 4,13) 그 후 바오로는 라오디케이아 교회에 많은 사랑과 관심을 기울인 듯하다. “라오디케이아에 있는 형제들에게, 또 님파와 그의 집에 모이는 교회에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콜로 4,15)
또 사도 바오로는 감옥에서도 라오디케이아 교회에 끝인사를 전하면서 자신이 쓴 편지를 라오디케이아 교회에서도 읽게 해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콜로 4,15-16)
|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