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일 (마태 13,44-52)
| ▲ 조재형 신부(서울데교구 성소국장) |
많은 사람이 휴가를 떠나는 계절입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위해 잠시 휴가를 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시원한 강물이 흐르는 계곡,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은 바다, 모든 것을 품에 안고 있는 산을 향해 휴가를 가는 것도 좋습니다. 어떤 분들은 피정을 떠나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농촌 봉사활동을 가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밀린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책을 읽기도 합니다. 선택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고인이 되신 최인호씨는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라는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가톨릭 신자인 최인호씨는 서울교구 주보에 ‘말씀의 이삭’을 3년간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소설가로서, 신앙인으로서, 길을 찾는 구도자로서 그분의 글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죽었다는 말을 듣기보다는 무엇을 하다가 죽었다는 말을 듣는 것이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낯익은 이 세상에서 소중한 것들을 간직하면서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낯익은 이 세상에서 소중한 것들을 버리고 세상을 떠나기도 합니다. 무소유를 이야기했던 법정 스님은 낯익은 이 세상을 떠나면서 버리고 떠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모든 이를 위해 모든 것이 되고자 하셨던 김수환 추기경님은 마지막 길에도 망막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나눔이 소유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분들은 이 세상이라는 밭에서 소중하고, 가치 있는 보물을 발견하였고, 그 보물을 얻기 위해서 다른 모든 것들을 기꺼이 포기하였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솔로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의 선택을 칭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것을 청하였으니, 곧 자신을 위해 장수를 청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그 대신 이처럼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자, 내가 네 말대로 해 주겠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솔로몬은 낯익은 이 세상에서 지혜라는 보물을 발견하였고, 하느님께 그 지혜를 청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많은 보물이 묻혀 있습니다. ‘진실, 사랑, 나눔, 무소유, 희생, 봉사, 겸손, 양보’라는 보물들입니다. 이 보물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보잘것없어 보이기도 하고, 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보물을 삽니다. 그 보물을 간직한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오늘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며칠 전 책을 읽다가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적어놓은 글이 있습니다.
“인내로 키가 크고
겸손으로 고개 숙이며
열정으로 열매 맺는
해바라기의 삶을 배운다면
다가오는 가을이 결코 외롭지 않으리.”
여름이 긴 것 같지만, 가을이 멀지 않았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끝없이 긴 것 같지만, 어느새 귀밑머리는 하얗게 변하고 해가 서산에 걸린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가장 소중한 것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그토록 소중한 것을 찾았으면 잘 간직하고 지켜내야겠습니다. 우리는 병 때문에, 돈 때문에, 욕심 때문에, 나이가 많기 때문에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사랑을 하다가, 가진 것을 나누다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다가 이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떠밀려 가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이라는 바다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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