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namsarang 2014. 7. 20. 19:11

[생활 속의 복음]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연중 제16주일 (마태 13,24-43)

▲ 조재형 신부(서울대교구 성소국장)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하느님을 믿는 것은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은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개념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에 구원의 개념은 ‘땅의 축복’이었습니다. 더 많은 가축을 기를 수 있고, 가족들이 함께 지낼 수 있는 땅을 소유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이며, 구원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더 많은 가축과 더 많은 땅을 줄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으며, 믿음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모세 시대에 구원의 개념은 ‘자유와 해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자녀 중에 아들은 태어나면 죽임을 당했습니다. 비록 이집트 땅에서 풍요를 누릴 수 있었지만, 자유와 해방이 없는 삶은 굴욕과 굴종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유와 해방을 말씀해 주십니다. 자유와 해방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과감하게 행동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용기를 주셨고, 드디어 근심의 바다, 두려움의 바다, 허무의 바다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예언자 시대에 구원의 개념은 ‘정의의 실현’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은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막에 물이 솟아나고, 사자와 어린이가 함께 뛰어노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묶인 이들이 자유를 얻고, 눈먼 이들은 눈을 뜨고, 굶주린 이들은 배불리 먹게 되는 세상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소수의 사람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복지가 이루어지는 세상을 말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 시대에 구원의 개념은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나라였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나라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보다 앞서서 하느님 나라 운동을 하였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서 시작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세례를 받으시면서 세례의 품격을 높여 주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순교한 다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말씀과 표징으로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비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가능성과 풍요로움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 말씀을 받아들였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새들처럼 날개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없이 추락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에게는 새들에게는 없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절망 속에서도 웃을 수 있고,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기심과 시기 욕망과 질투 그리고 분노와 저주와 같은 악한 기운도 숨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없이 선하신 하느님의 모상도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위로를 주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제1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관용을 보여 주셔서 우리가 죄를 지으면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한없는 자비와 사랑으로 회개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느님의 한없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이웃과 형제들에게 자비와 관용을 베풀어야겠습니다. 우리가 거저 받았으니 우리들 또한 거저 줄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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