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나는 셋째”

namsarang 2014. 6. 29. 15:21

[생활속의 복음]

“나는 셋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마태 16,13-19)

▲ 조재형 신부(서울대교구 성소국장)


오늘 우리는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 두 분은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 참된 신앙인입니다. 하지만 이 두 분은 완벽한 신앙인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열정은 있었지만 그것을 꽃피울 냉철한 이성은 부족했습니다. 말은 하였지만 그것을 실천할 추진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런 베드로 사도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겨 주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을 박해하였습니다. 교회의 첫 순교자 스테파노가 죽을 때 바오로 사도는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제자들을 잡으러 가던 길에 예수님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해박한 지식과 강력한 추진력으로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세운 교회에 편지를 보냈고, 그의 편지는 초대교회의 신학과 교리의 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강한 추진력 때문에 때로 다른 사도들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바오로의 부족함을 아시면서도 그에게 초대교회를 이끌어 갈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전에 잘 알던 한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그 친구는 공부도 잘하고 자기에게 맡겨진 일도 충실히 하고 성적이 뒤진 친구들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그러기에 친구들에게서도 사랑 받던 친구였습니다. 그 학생의 하숙집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집에서 사진 대신 ‘나는 셋째’라는 글귀가 담겨 있는 이상한 사진틀을 보았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제 어머니께서 대학 입학 기념으로 저 사진틀을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나 첫째는 하느님이다. 둘째는 네 이웃이다. 세 번째는 바로 너다.” 그 이후부터는 어디로 가든, 무엇을 하든, 이 사진틀을 가지고 다닌다고 합니다.

‘나는 셋째’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이 집 떠나는 그 학생의 길잡이가 되었듯이 복음 전파를 위해 파견되는 제자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가르침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길잡이 말씀은 ‘하느님 첫째와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자리 어디에나 있고 또 언제나 찾아오는 십자가, 즉 고통과 슬픔, 패배와 절망, 사고와 질병 등의 어려움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 반응은 저마다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분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하필이면 나에게 일어나야 하나?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는 말인가?” 하고 분노합니다. 분노할수록 고통과 슬픔은 무겁게 느껴집니다. 분노는 이웃에 조소적인 태도를 갖게 하며 더 심해지면 타인을 증오하는 비참한 상태에 떨어지게 만듭니다. 위로의 말도 더 비참한 사람도 있다는 일깨움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남편을 하느님 품으로 떠나보내는 장례미사를 봉헌한 적이 있습니다. 장례미사 끝에 고인의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읽어드리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아빠 그곳은 참 좋은 곳인가요? 이제는 더 이상 아프지 않으신 거죠. 이렇게 빨리 가실 줄 알았으면 좀 더 아빠 계실 때 효도하고 착하게 지낼 것을. 아빠! 이제는 누나들과 싸우지 않고 아빠 대신 엄마를 위로하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비록 아빠를 잃은 슬픔에 괴로워하지만, 하느님의 커다란 뜻을 따르고, 남아 있는 가족들끼리 열심히 살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 질병, 어려움의 십자가 상황에서 ‘그렇습니다’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딸을 교통사고로 잃고 불쌍한 어린이를 돌보는 데 전 생애를 바치는 아버지, 민주화를 외치다 죽어간 아들을 대신하는 어머니, 그 모습들은 십자가를 지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하느님 앞에는 너무 빠른 것도, 너무 느린 것도 없습니다. 천 년도 하느님 앞에는 지나간 어제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 앞에는 완벽한 것도, 똑똑한 것도, 재능이 있는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길가의 돌 하나로도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 사도가 흘렸던 참회의 눈물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오로 사도가 보여주었던 새로운 삶으로의 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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