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과 주인, 차별 없었던 초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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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인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안식년과 희년 때 종을 해방시켜줬다. 사진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난민캠프에 있는 한 모녀의 모습으로 제 땅을 잃은 이들의 처지가 종살이나 다름없다. 【CNS】 |
예수님 시대 유다인 사회에는 노예제도, 즉 ‘종’이 있었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에도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마태 24,45-51)과 ‘가라지’(마태 13,36-42), 그 밖의 복음서 여러 곳(마태 10, 24; 20,27; 24,25; 루카 12,35; 17,7; 요한 8,35 등)에 종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러나 유다인의 종은 로마나 그리스의 노예들과 처지가 사뭇 달랐다. “노예도 인간인가?”라는 말처럼 로마제국 시대 종은 법률적으로 물건과 같이 다루어졌다. 하지만 종에 대한 유다인의 태도는 훨씬 인간적이다(집회 33,25-31). 욥기에는 종에 대한 인권 존중 사상이 더욱 뚜렷하게 나온다. “남종과 여종이 내게 불평할 때 내가 만일 그들의 권리를 무시하였다면 하느님께서 일어나실 때 내가 무엇을 하고 그분께서 신문하실 때 내가 무어라 대답하리오. 어머니 배에서 나를 만드신 분이 그도 만드시고 바로 그분께서 우리를 모태에서 지어내지 않으셨던가”(욥 31,13-15).
이처럼 유다인들이 로마나 그리스인들과 달리 자신의 종들에게 관대했던 이유는 성경의 가르침에 기인한다. 성경은 이스라엘 선조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한 사실을 상기시키고 노예들에게 관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 율법은 노예를 죽인 주인을 벌하고, 구타를 당해서 상처를 입거나 실명하거나 그 밖의 가혹한 학대를 받은 노예는 석방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율법은 히브리인 종과 외국인 종을 차별했다(레위 25,44-55). 시장에서 사들인 외국인 종은 히브리인 종만큼 보호받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외국인 종이라고 해서 함부로 죽이거나 상처를 입히거나 학대해서는 안 되고, 안식일 휴식도 보장해줘야 했다(탈출 20,10; 23,12). 또 종이 도망하더라도 로마인처럼 원주인에게 강제로 넘겨서는 안 되고 이방인 출신이라 해서 지역에서 내치거나 구박해서도 안 되었다(신명 23,16-17).
하지만 외국인 종이라 하더라도 유다인 사회에 속해 있는 이상 성경의 명령을 따라야 했다. 외국인 종들도 할례를 받아야 했다(창세 17,12). 그러나 본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할례를 강요하지 않았다. 만약 외국인 종이 열두 달 이상 할례받기를 거부하면 “할례를 받지 않은 남자는 자기 백성에게서 잘려나가야 한다”(창세 17,14)는 말씀에 따라 그를 외국인에게 팔아넘겨야 했다. 반면, 할례를 받은 외국인 종은 가족의 일원으로 간주해 사제에게서 ‘거룩한 예물’을 먹을 수 있었다(레위 22, 10-13). 그러나 외국인 종인 히브리인 종과 똑같은 종교적 의무나 공민권은 없었다.
구약성경의 율법은 죄 없는 유다인을 종으로 만드는 것을 금했기에 팔레스타인 지방에서의 히브리인 노예 매매는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빚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나 훔친 물건을 변상할 수 없는 도둑은 제 몸을 팔아 종이 돼야 한다(탈출 22,3-6 참조)는 무서운 율법이 있었다. 또 굶어 죽기보다는 종이 되기를 원하는 가난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경우 주인은 그의 오른쪽 귓바퀴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종의 표시를 남겼다(탈출 21,6). 율법은 이스라엘 사람이 이처럼 종으로 팔릴 때의 조건과 또 그의 주인이 보살펴야 할 조건을 대단히 세밀히 규정하고 있어 ‘히브리인의 노예를 사는 것은 그를 주인으로 맞는 것’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유다인의 가장 숭고한 전통인 ‘안식년’ 법은 정기적으로 7년마다 사회적 평형을 회복해 일체의 부채를 탕감하고, 사람은 물론 가축이나 토지까지도 휴식을 주도록 규정했다. 이 안식년 법에 따라 유다인 사회에서 히브리인 종에게는 여섯 해 동안 종살이를 하고, 일곱째 해에는 대가 없이 자유로운 몸으로 해방을 시켜줬다(탈출 21,2). 반면, 외국인 종은 원칙적으로 50년이 되는 해인 ‘희년’이 되어서야 해방됐다(레위 25,40). 이처럼 히브리인 종은 조건이 까다로웠기 때문에 외국인 노예보다 값이 20분의 1이나 쌌다.
여자 종의 지위는 히브리인이건 외국인이건 남자의 경우와 달랐다. 원칙적으로 종과 결혼한 여자는 남편이 해방되거나 전매될 때에 운명을 같이했다. 그러나 결혼하기 전에 어떤 주인에게 소속돼 있었으면 그 주인이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을 붙들어 둘 수가 있었다. 그러나 여자 종 대부분은 그 주인이나 주인 아들의 첩이었다. 이런 경우 여자가 안식년의 해방을 요구하지 않으면 그대로 있을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종의 지위를 잘 알고 계셨고(마태 10,24; 20,27; 24, 45-47; 루카 12,37; 17,7; 요한 8,35), 또 그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셨다. 예수님께서 더 마음에 쓰신 것은 모든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스스로 멍에를 멘 정신적 노예였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은 주인과 종 간 일체의 차별을 폭넓은 사랑으로 없앨 것을 강조하셨다. 바오로 사도도 자주 주인에게 관용을, 종살이하는 이들에게는 복종을 권고했다(에페 6,5; 콜로 3,22; 티토 2,9). 초대 교회에는 주인도, 종도 없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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