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

(23) 노동자

namsarang 2014. 9. 17. 17:23

[복음 이야기]

(23) 노동자

노동은 신성, 노동자는 존경받아야


▲ 성경의 시대 유다인들은 경작에 관계된 노동을 특히 사랑하고 중히 여겼다. 사진은 한 유다인 농부가 농토를 돌보고 있다. 【CNS】




이스라엘에는 종살이하는 노예가 많지 않았고 또 오늘날의 중산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유다 사회의 바탕을 이루는 기본 계층은 각종 직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었다. 복음서에는 이들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가 잘 나타난다. 복음서에는 밭 가는 사람, 씨뿌리는 사람, 목수, 어부 등 갖가지 직업인들이 등장한다. 예수님도 이 계층에 속해 있었기에 그들의 생활 양식을 잘 알고 계셨다.

유다인은 노동에 대해 이중 관점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빵을 얻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을 하느님께서 인간의 원죄에 대한 결과로 명하신 것이라 여겼다(창세 3, 17-19 참조). 다른 하나는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는 인식이었다. 이스라엘의 랍비들은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신명 30,19)는 말씀을 “하느님께서 노동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가르쳤다. 또 바오로 사도는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2테살 3,10)며 노동의 의무를 강조했다. 바오로 사도의 이 유명한 격언은 레닌이 그대로 인용해 더욱 세상에 알려졌다.

아담도 에덴동산에서 ‘땅을 부치며’ 살았고, 아브라함을 비롯한 이스라엘 성조들과 예언자, 초기 왕들도 모두 노동을 했다. 토라(율법)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빵을 얻기 위해 노동을 해야 했다. 예수님 시대의 율법학자들 역시 생계를 위해 노동을 했다. 랍비 아키바는 나무꾼이었고, 요수아는 숯장이, 메일은 대서인, 요카난은 구두장이, 사울은 무덤 파는 인부, 힐렐은 하루 반 데나리온씩 받는 날품팔이였다. 이처럼 유다인들은 반드시 직업을 가져야 했다.

예수님과 사도들도 모두 노동자였고 바오로 사도 역시 “아무에게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2테살 3,8)라고 한 말처럼 천막 짜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유다인들이 특히 사랑하고 중히 여긴 직업은 토지와 관계있는 모든 노동이었다. 집회서의 저자 벤 시라는 “힘든 일을 싫어하지 말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창조하신 들일을 싫어하지 마라”(집회 7, 15)고 했다.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 역시 본질적으로 농업 및 목축의 나라로서 그 경제를 온전히 토지에 의존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씨뿌리는 사람과 포도밭 일꾼, 길잃은 양을 찾아 헤매는 목자 등 땅을 기반으로 한 생생한 비유가 펼쳐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예수님 시대 때 직업의 우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금은 세공사, 신발을 만드는 자, 목수 등은 다른 일보다 고상한 직업으로 간주했다. 한편, 가축의 털을 깎는 자, 가죽 무두장이는 냄새가 나기 때문에 존경을 받지 못했고, 향료나 화장품을 파는 상인은 품행이 좋지 않은 여자들과 거래하기 때문에 경멸의 대상이 됐다. 가장 평이 좋지 않은 직업은 뱃사람, 대상(隊商) 안내인, 점포 주인이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노동은 신성하다. 일하는 자는 존경받는다”는 통념을 항상 갖고 있었다.

성경에는 주인과 일꾼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율법이 있다.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사회적 노동법을 제정한 것이 바로 유다인이다. 그 기원은 모세에게로 소급된다. 모세는 품삯에 관해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너희는 너희 동족들 가운데에서나, 너희 땅, 너희 성안에 있는 이방인들 가운데에서, 가난하고 궁핍한 품팔이꾼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 그의 품삯은 그날로 주어야 한다. 그는 가난하여 품삯을 애타게 기다리므로,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품삯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가 너희를 거슬러 주님께 호소하지 않을 것이고,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이다”(신명 24,14-15).

성경은 또한 노동자들에게 주인을 존경하고 그에게 순종해 충실히 봉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랍비 요셉은 석수였는데 어느날 공사장 발판 위에서 일하고 있을 때 누가 찾아와서 종교 문제에 관한 의견을 들려 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내려갈 수 없으니 저녁때 봅시다. 나는 일당을 받고 있기에 주인에게 고용된 동안은 잠시도 일터를 떠날 수 없습니다”. 측량사였던 랍비 힐키아도 역시 누가 와서 기우제를 위해 쓸 기도문을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비슷한 대답을 했다. 이들처럼 이스라엘에서 가장 존경받던 율법학자들도 고용주와의 관계에 대한 의무를 준수하며 노동을 했다는 것은 오늘날 눈여겨볼 대목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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