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위해 폭력도 서슴지 않은 열혈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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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시대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나름 ‘열심히’ 살려는 경건한 유다인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경건한 유다인들을 ‘젤롯’(우리말로 열심쟁이)이라 했다. 젤롯은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며 이방인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고 하느님의 주권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헌신했다. 하느님께 열심인 이들 젤롯은 자신들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선 서슴지 않고 극단적인 폭력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들은 구약의 엘리야 예언자, 마타티아스 사제처럼 모세의 율법에 충실하지 않은 유다인들을 처벌하거나 심지어 살해했다. 그래서 예수님 시대 젤롯은 이방인들에게서 이스라엘을 분리시키기 위해 무력을 행사할 용의가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도 젤롯이 있었다. 바로 ‘시몬’(루카 6,15; 마르 3,18; 마태 10,4; 사도1,13)이다. 헬라어 성경 본문에는 시몬을 ‘호 젤로테스’(루카 6,15; 사도 1,13)와 ‘호 카나나이오스’(마르 3,18; 마태 10,4)라 구분해 부르고 있는데 반해 우리말 성경은 모두 ‘열혈당원’이라 번역해 놓았다. 최근 미국 성경학계 중심으로 시몬을 가리키는 ‘호 젤로테스’가 특정 당원이 아니라 하느님의 율법을 엄격하게 준수할 것을 강조하는 유다인으로 보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시몬은 혁명 세력인 젤롯당원이 아니라 율법을 어기는 자들에 대해 과격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얻어진 별명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자신을 일러 “유다교를 신봉하는 일에서도 동족인 내 또래의 많은 사람보다 앞서 있었고,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심(젤로테스)이었습니다”(갈라 1,14)라고 소개했다. 또 “오늘날 여러분이 모두 그렇듯이 나도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사도 22,3)라고 고백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기 전 젤롯으로 교회를 박해했고 스테파노의 순교 현장에 적극 동참하기도 했다.
또 젤롯은 예수님 시대 로마와 그 동조자들에 대항해 이스라엘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고 하느님 나라를 세우고자 결성된 혁명 조직을 말하기도 했다. 서기 6년 갈릴래아 출신 유다는 로마인들이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이스라엘 인구 조사를 실시하자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며 납세 거부 운동을 주도하며 열혈당을 결성했다. 유다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이 열혈당을 바리사이, 사두가이, 에세네와 구별해 ‘제4철학’이라고 「유다 고대사」에서 소개했다.
이들은 ‘시카’(단검)를 들고 예루살렘 도심 중심가 대로에서 한낮에 암살을 자행해 ‘시카리’라고도 불렸다. 이들은 특히 축제 기간에 주로 암살을 자행했는데 로마인이나 로마 군인이 아니라 항상 그 동조자들인 유다인 권력자와 부자들을 선별해 납치 살해했다.
이들은 서기 66년 여름 가난한 농민들과 연합해 제1차 유다 독립 전쟁을 일으켰으나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에게 밀려 70년 야르데 숲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대부분 목숨을 잃고, 최후의 항거지인 마사다 요새에서 74년 모두 자결했다. 이때 여자와 어린이를 제외한 성인 남자만 960명이 옥쇄했다.
역사가 가운데 예수님을 젤롯당원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또 그 동조자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아울러 사상적으로는 혁명적이었으나 폭력을 거부하고(마태 26,52) 세리를 받아들이고(마르 2,15-17), 원수를 사랑하라(마태 5,44)고 가르친 예수님은 열혈당을 거부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하지만 통상 예수님과 젤롯을 연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게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예수님은 비폭력을 가르치고 실천했으나 하느님 나라에 관한 그의 가르침은 유다 당국자와 로마 지도자들에겐 심각한 위협이었다. 예수님께서 율법과 성전 중심의 현 체제와 로마 지배를 비판했고 메시아를 통해 새로운 질서 즉 하느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이 가르침 때문에 예수님은 결국 유다 당국자들에게 사형 선고를 받고 로마인에 의해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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