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

(36) 성전 (3)

namsarang 2014. 11. 26. 18:53

[복음 이야기]

 (36) 성전 (3)

소박했지만 민족 부흥의 표지 즈루빠벨


▲ 솔로몬 성전은 오늘날 예루살렘 구시가 동쪽 ‘하람 에슈 셰리프’ 지역에 터했다. 이후 즈루빠벨과 헤로데가 지은 성전도 이 솔로몬 성전 터 위에 재건됐다. 유다인들은 성전 터가 오늘날 ‘황금 돔’으로 유명한 이슬람 엘 악사 모스크 자리이며 안에 있는 너른 바위 위에 계약의 궤를 모신 지성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은 성전 터 위에 세워져 있는 엘 악사 모스크.




솔로몬이 지어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께 처음으로 봉헌한 예루살렘 성전은 기원전 587년 바빌론(신바빌로니아 왕국)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해 파괴됐다(2열왕 25,1-21). 예루살렘을 함락한 친위대장 느부자르아단은 성전과 솔로몬 궁,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불태우고 성벽을 허물었다. 아울러 성전의 금과 은, 청동으로 만든 성물을 약탈하고 스라야 수석 사제를 비롯한 성전 사제들과 대신들을 바빌론으로 압송해 하맛 땅 리블라에서 처형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빌론으로 유배시켰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기원전 538년 바빌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으로 해방되어 유배생활 50년 만인 이듬해부터 세스바차르의 지도로 성전 기물과 함께 본국으로 귀환했다(에즈 1-2장).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들은 옛 자리에 제단을 쌓고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고 저마다 예물을 바치며 성전 재건에 힘썼다. 하지만 이 재건 공사는 사마리아 귀족들의 방해로 키루스 임금과 크세르크세스 1세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시대까지 16년간 중단해야 했다(에즈 4장). 이방인들과 섞여 이스라엘 땅에 살던 사마리아인들이 성전 재건 공사에 동참하려 하자 이스라엘 원로들이 거절했고, 이에 화가 난 사마리아 귀족들이 성전 건축을 ‘반역 행위’로 몰아 페르시아 당국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다리우스 임금 통치 2년째 기원전 520년 예언자 하까이와 즈카르야의 촉구로 대사제 예수아와 지방 장관 즈루빠벨은 다리우스 임금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해 달라는 장계를 올렸다. 장계에는 ‘키루스 임금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으라고 허락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장계를 읽은 다리우스 임금은 바빌론 문서고에서 키루스 칙령을 발견하고 성전 재건 공사를 그 해 허락했다. 성전 재건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돼 다리우스 재위 6년째인 기원전 515년 아다르달(2월 중순~3월 중순) 초사흗날에 완공해 봉헌식을 올렸다. 이날 봉헌식에는 황소 200마리와 숫양 200마리, 어린양 400마리를 제물로 바쳤고, 온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 제물로 숫염소 12마리를 봉헌했다(에즈 6,1-22). 이 성전은 약 500년간 유지됐다.

‘즈루빠벨 성전’이라 불린 이 성전은 성경에 상세한 내용이 없어 그 규모와 구조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대략 가로세로 길이와 높이가 각각 60암마(28~32m)로 전해지며 솔로몬 성전보다 훨씬 소박했다. 즈루빠벨 성전이 솔로몬 성전에 비해 얼마나 소박했는지 성경은 “옛 성전을 보았던 많은 노인이 목 놓아 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에즈 3,12).

계약의 궤는 이미 바빌론 포로 시절에 없어졌고, 이후 다시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즈루빠벨 성전의 성소에는 솔로몬 성전의 10개의 등잔대 대신 일곱 개의 가지를 가진 1개의 등잔대만 놓였고 제사상과 분향 제단이 마련됐다(1마카 1,21. 4, 49-51).

기원전 333년 페르시아를 멸망시킨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적의를 품고 예루살렘을 쳐들어갔으나 야두아 대사제의 환대를 받은 후 성전에 제물을 바치고 유다인의 특권을 인정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기원전 323년 바빌론에서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1마카 1,1-7).

이후 셀레우코스 왕조가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지역을 통치하게 됐고 안티오코스 4세(기원전 175~164)가 왕위에 오르면서 유다인을 박해했다. 안티오코스 4세는 기원전 167년 이집트를 침략하고 돌아가는 길에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을 약탈하고 제우스 신상과 제단을 세웠다. 그리고 마구 살육을 저질렀다. 성경은 이날을 “이스라엘 곳곳에는 큰 슬픔이 일어 지도자들과 원로들은 탄식하고 처녀 총각들은 기운을 잃었으며 여인들의 아름다움은 사라졌다.…땅도 그 주민들 때문에 떨고 야곱의 온 집안은 수치로 뒤덮였다”(1마카 1,25-28)고 증언하고 있다.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예루살렘 성채를 회복한 마카베오는 기원전 164년 즈루빠벨 성전에 놓인 제우스 신상과 제단을 부수고 새 제단을 쌓아 성전을 정화했다. 유다인들은 이날을 기념해 ‘하누카’ 축제를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비록 솔로몬 성전에 비해 그 규모와 화려함이 훨씬 뒤떨어졌지만 즈루빠벨 성전은 이스라엘 민족 부흥의 표지였으며, 이교도에 대한 저항의 중심으로 유다인들이 충심으로 아끼던 성전이었다. 즈루빠벨 성전은 이두메와 출신의 유다 왕 헤로데가 기원전 19년 유다인을 회유하기 위해 새 성전을 지으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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