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늘 함께하신다’는 표징
| ▲ 하느님께서는 집을 짓고 특정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것을 금하셨다. 사진은 판관이나 왕이 사용했던 천개를 재건한 모습. 출처=「성경 역사 지도」, 분도출판사 |
“만군의 주님, 당신의 거처가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주님의 앞뜰을 그리워하며 이 몸은 여위어 갑니다. …행복합니다. 당신의 집에 사는 이들! 그들은 늘 당신을 찬양하리니. 셀라. …정녕 당신 앞뜰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습니다. 저의 하느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 안에 살기보다 더 좋습니다”(시편 84,1-11).
이와 같이 시편은 20회 이상이나 성전의 아름다움과 신심 깊은 모든 유다인의 성전에 대한 애착을 노래하고 있다.
유다인에게 성전은 삶의 핵이며 중심이었다.
이스라엘에 있어 성전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유다 역사학자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유일신에게는 오직 하나의 성전, 즉 하느님께서 그렇듯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인 오직 하나의 성전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이 게리짐 산에 세운 성전을 “하느님이 싫어하시는 이단자의 것”이라고 유다인들은 경멸했다.
유다인에게 성전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늘 함께하신다는 ‘현존의 표징’이었다. 이 성전을 구약성경에선 히브리말로 ‘미케다쉬’와 ‘헤칼’로, 신약성경에선 헬라말로 ‘이에론’ ‘나오스’ ‘오이코스’라고 표현했다. 가톨릭 교회는 이 성전을 ‘그리스도의 몸과 교회’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족장 시대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위한 특별한 성전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원하는 곳에 나타나시고 족장들은 하느님께서 현시하신 곳에 희생 제단이나 돌기둥으로 기념하는 것으로 족했다(창세 28,22). 그러나 이스라엘이 민족 단위로 성장하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섬기며 민족 전체가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게 됐다. 이집트 탈출 후 40년간의 광야 생활과 가나안 정복 이후 판관 시대에는 계약의 궤를 모신 ‘성막’이 그 역할을 했다(탈출 25장 참조). 특히 판관 시대(기원전 1250~1050년께)에는 성막이 정치ㆍ종교ㆍ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구심점이었다. 이 성막이 있었던 ‘길갈’(여호 4,20)ㆍ‘스켐’(여호 24,1)ㆍ‘실로’(1사무 1,3)는 이스라엘의 중심이 됐다.
왕정 시대로 통일 왕국을 건설한 다윗은(기원전 1010~970년) 성전을 건축(2사무 7,2)하려 했다. 그는 건축 자재를 구하고 보물을 모으며 성전 터를 사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으나 전쟁터에서 많은 사람을 죽여 하느님께로부터 성전 건축의 허락을 받지 못했다(1역대 22,8; 2사무 24,18-25).
그래서 그의 아들 솔로몬이 기원전 968년에 성전 건축을 시작해 7년 후에 완공했다(1열왕 6,37-38). 따라서 유다인이 봉헌한 하느님의 첫 성전은 예수님 탄생 1000년 전에 지어졌다.
사실 율법은 집을 지어 우상 숭배하는 것을 금하고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곳에서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바치도록 명하고 있다(신명 12장 참조). 그래서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 했을 때 나탄 예언자는 다윗에게 하느님의 계시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어떤 집에서도 산 적이 없다. 천막과 성막 안에만 있으면서 옮겨 다녔다.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과 함께 옮겨 다니던 그 모든 곳에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의 어느 지파에게, 어찌하여 나에게 향백나무 집을 지어 주지 않느냐고 한 마디라도 말한 적이 있느냐?”(2사무 7,5-7)며 성전을 짓지 말라고 하셨다.
또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늘이 나의 어좌요 땅이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에게 지어 바칠 수 있는 집이 어디 있느냐? 나의 안식처가 어디 있느냐?”(이사 66,1) 하고 하느님께 어떤 집을 지어 드릴 수 있는지 반문한다.
첫 그리스도교 순교자 스테파노도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에는 살지 않으십니다. 이는 예언자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하늘이 나의 어좌요 땅이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에게 무슨 집을 지어 주겠다는 것이냐? 또 나의 안식처가 어디 있느냐? 이 모든 것을 내 손이 만들지 않았느냐”(사도 7,48-50)며 성전을 중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전통을 존중하시면서 성전에 가서 유다인들과 같이 성부이신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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