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새로 쓰는 대한민국 70년

[새로 쓰는 대한민국 70년(1945~2015)]

namsarang 2015. 1. 15. 22:43

[새로 쓰는 대한민국 70년(1945~2015)]

 

"광복 직후의 가요야말로 당시 時代相 정확하게 반영"

  •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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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5.01.15 03:00

    -대중문화 평론가 이준희 교수
    "개인적 사랑·이별 감정보다 정치·사회적 사건 많이 담아"

    
	이준희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8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분단과 전쟁은 가요계에도 막대한 손실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준희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8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분단과 전쟁은 가요계에도 막대한 손실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대중문화 평론가 이준희(43)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한국 가요사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온 세 번의 분기점으로 1945년 광복과 1961년 '노란 셔츠의 사나이' 발표, 1992년 서태지의 등장을 꼽았다. 일제 강점기로부터의 해방은 대중음악사에서도 신세대 가요(서태지)나 경쾌한 스탠더드 팝 스타일의 가요('노란 셔츠')의 출현 이상으로 중대한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정작 광복 당시 한반도에는 대량으로 음반을 생산할 공장이 없었다. 이 때문에 2년여간은 상업용 가요 음반이 출시되지 못했다.

    하지만 1948년 전후로 '귀국선'과 '가거라 삼팔선'처럼 광복의 기쁨과 분단의 아픔을 담아낸 노래들이 고려레코드 등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이 교수는 "당시는 가요도 사랑과 이별 같은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정치·사회적 사건이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았던 사실주의(寫實主義)의 시기"라고 말했다.

    그중에는 "왜놈이 물러갈 땐 조용하더니, 오늘 식구끼리 싸움은 왜 하나요"라는 가사가 들어 있는 남인수의 1949년 곡 '여수야화(麗水夜話)'처럼 정치색을 강하게 드러낸 경우도 있었다. 이 노래는 여순반란사건을 연상시킬 여지가 있다는 사유로 '대한민국 금지곡 1호'가 됐다. 그는 "흔히 유행가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지만, 해방 직후의 가요야말로 정확하게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광복 직후의 가요는 역설적으로 음악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던 시기이기도 했다. 일본 대중음악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5음계 단조의 트로트는 1930년대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거기에 1940년 무렵부터 밝고 경쾌한 '장조 트로트'로 장르의 범위가 넓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그는 "미8군 쇼 계통의 밝고 경쾌한 스탠더드 팝 양식은 6·25전쟁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해 1961년 '노란 셔츠'의 히트로 대중화했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석사 과정까지 수료했지만, 전공을 음악학으로 바꾼 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다시 밟았다. 5년간 '가요무대'의 자문위원으로 일했고, 가수 남인수 전집을 비롯해 10여종의 옛 가요 음반을 기획했다. 그는 해방 직후 가요계의 특징으로 교과서적 창법과 발성을 지닌 가수들의 등장을 꼽았다. "특히 남인수는 발음이 정확한 데다 음 하나도 흘리는 법 없이 깐깐하게 불러서 듣기만 해도 그대로 채록(採錄)할 수 있어요. 가사를 낭독해보면 한 편의 시(詩) 같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