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史교과서 국정화] [국사 교과서 어떻게 만들 것인가] [2] 美·英서 배우는 교훈
30년前 영국, 패배주의적 역사 교과서를 자부심 느끼게 바꿔
- 美상원, 편향 교육에 철퇴
"조지 워싱턴은 소홀하게 묘사… 헌법에 대해선 언급조차 안해"
20년전 표준書 폐지 결의안, 99對1 거의 만장일치로 지지
- 英 대처의 역사 교육 개혁
빅토리아 여왕시대·산업혁명… 정부, 자랑스러운 역사로 교육
개혁 후 논쟁 이어졌지만 이젠 부정적 교육 자취 감춰
"우리 아이들이 미국 역사에 대해 무엇을 더 중요하게 배워야 합니까. 조지 워싱턴(미국 초대 대통령)입니까 아니면 바트 심슨(TV 만화 심슨 가족의 주인공 캐릭터)입니까."(1995년 1월 18일 미국 연방의회에서, 공화당 슬레이드 고턴 상원의원)
20년 전 미국에서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역사 교과서 논쟁과 판박이처럼 닮은 역사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미국 정부는 '미국의 학교 교육 수준을 끌어올리자'면서 역사를 포함한 다섯 과목의 표준서를 만들기로 했다. 표준서는 각 학교에서 어떤 것을 가르쳐야 할지 다룬 표준화된 교과과정을 뜻한다. 그런데 역사 표준서가 발간될 즈음인 1994년부터 '이념적으로 편향됐다'며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조지 워싱턴 소홀히 다루면서…
1994년 10월 20일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이란 기고문은 역사 표준서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린 체니(Cheney·딕 체니 전 부통령의 아내) 국립인문학기금 전 의장은 이 글에서 "조지 워싱턴은 지나가는 인물 정도로 묘사(fleeting appearance)됐을 뿐인 데다, 미국 헌법에 대해선 언급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또 "에디슨, 아인슈타인 등은 등장하지 않는데, '매카시즘'은 19차례나 나온다"고 썼다. 요컨대 미국 학생들이 꼭 배워야 할 주요 인물과 사건은 빼먹고, 이념 편향된 내용만 많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표준서를 두고 '정치화된 역사'라고 비판하는 측과 '표준서 내용을 왜곡해 억지 주장을 한다'는 측이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이 논쟁에 대해 변곡점을 찍은 사건이 1995년 1월 미국 연방의회에서 일어났다. 공화당 슬레이드 고턴(Gorton) 당시 의원은 역사 표준서를 두고 "우리 아이들이 미국 역사에 대해 무엇을 더 중요하게 배워야 합니까. 조지 워싱턴입니까 아니면 바트 심슨입니까"라고 일성을 질렀다. 주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은 허술하게 다루면서, TV 만화 심슨 가족에 나오는 가치관은 분석하라는 식으로 만들어졌고, 소수 인종·계층의 이야기에만 너무 많은 양을 할애했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역사 표준서는 '반(反)아메리카적'이라 과도한 표현 몇 개 고쳐야 소용없다"면서 전체를 폐기할 것을 주장했다. 그의 표준서 폐지 결의안은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찬성 99표, 반대 1표로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를 받았다.
◇미국적 가치를 지키는 교과서
미국은 교과서 발행에서 자율적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지만, 1990년대 중반 역사 논쟁 등을 거친 뒤 주요 교과서가 최소한 '미국의 가치'에 대해서는 풍성하게 소개하고 있다. 본지가 미국 최대 교과서 출판사인 프렌티스홀의 '미국사(United States History)' 교과서를 확인한 결과, 조지 워싱턴의 가족사부터 독립군 총사령관에서 초대 대통령이 되기까지 과정이 상세하게 실려 있었다. 미국 헌법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뤘다. '헌법 제정(Creating the Constitution)'을 별도 장(58쪽 분량)으로 분류해 상세하게 다뤘다. '매카시즘'은 프렌티스홀 미국사 교과서엔 딱 한 페이지 분량만 나왔다.
정경희 영산대 교수는 "미국의 당시 역사 표준서가 '반미국적'이라는 데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상원의원이 동의했다"며 "미국의 가치를 지키고, 이를 학생들에게 제대로 알리자는 데 초당적으로 합심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처의 영국 역사 교육 개혁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세계 패권국 지위를 잃은 영국에선 자국사를 폄하하는 내용을 담은 역사 교과서로 수업하는 학교가 1970~80년대에 많았다. 영국의 과거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이 지나쳐 패배주의적 사관이 학교 교육에 스며든 것이다.
당시는 학생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한 교사의 결정권이 절대적이어서 영국의 부정적 역사를 들춰내 수업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교사도 있었다. 예컨대 영국의 전성기로 꼽히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를 귀족들의 마약이 판친 향락의 시대로 수업 시간에 가르치곤 했다.
이 같은 영국 역사 교육의 위기를 바로잡기 위해 나선 인물이 마거릿 대처 당시 총리다. 1979년 정권을 잡은 보수당은 교사의 자율에 맡겨온 학교 교육에 국가가 개입하는 대대적인 교육 개혁을 추진했다. 1980년대까지 영국 역사 교육은 역사적 사실보다 탐구하는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며 빅토리아 시대와 산업혁명 등 영국이 자랑하는 시기에 대해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교과서 중에는 영국 전성기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경우도 많았다. 대처 총리는 "영국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 시기를 암울하게 묘사한 역사 교과서 때문에 우리 모두가 영국의 역사를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후 수년간의 준비 끝에 대처 정부는 교육개혁법(Education Reform Act·1988년)을 제정해 국가 교육과정(National Curriculum)을 도입했다. 학교와 교사가 임의로 정했던 교육 내용을 국가가 표준화해 교육과정으로 내놓은 것이다. 역사 과목의 경우 영국 의회가 발달한 튜더 왕조와 빅토리아 시대 등을 핵심 단원으로 규정해 학생들이 영국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키우도록 했다.
◇"자랑스러운 英 역사 가르쳐야"
당시 케네스 베이커 교육부 장관은 교육개혁법안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그동안 교육 현장에선 영국 역사를 수치스럽게 느끼도록 했던 역사적 서술이 장악했는데, 이제는 산업혁명 등 세계의 발전에 기여한 영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며 국가 교육과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교육 개혁 이후에도 영국에서 역사 교육 논쟁은 한동안 이어졌다. 1992년 보수당 존 메이저 총리는 "아직도 교육 현장에서 영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외면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역사를 은밀하게 공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역사 교육에서 최근 20년의 당대사(當代史) 배제'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역사학계의 반발로 무산됐다.
하지만 영국 학교에서는 과거 1970~80년대처럼 영국을 부정하는 반(反)영국 역사 교육 풍토는 자취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