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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축구대표팀과 청와대서 칼국수 먹으면서 "어이! 최인영!"

namsarang 2015. 11. 25. 20:20

YS, 축구대표팀과 청와대서 칼국수 먹으면서 "어이! 최인영!"

 

입력 : 2015.11.25 07:39 | 수정 : 2015.11.25 10:49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축구 사랑은 남달랐다.
YS가 조깅을 즐긴다는 사실은 알려졌지만 축구 선수 출신이라는 걸 아는 이는 드물다. 어린 시절 축구를 즐겼던 YS는 경남중학교 재학 당시 축구부 주장을 맡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YS는 재임 중 축구 대표팀에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다.
젊은 시절의 YS가 축구 경기 도중 휴식을 취하며 동료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 /김영삼 대통령 기록전시관 제공
젊은 시절의 YS가 축구 경기 도중 휴식을 취하며 동료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 /김영삼 대통령 기록전시관 제공
축구와 관련된 재밌는 일화는 상당하다. 특히. 1994년 미국 월드컵팀과의 에피소드가 많았다. 대표팀은 미국월드컵 대회 직후 YS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했다. YS의 대표팀 격려 자리였다. 당시 청와대 메뉴는 칼국수였다. 칼국수를 먹고 디저트로 과일 서너 조각 그리고 차를 마시는 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기자는 헤드테이블에 코칭스탭과 앉아있었다.

미국월드컵 대표팀은 2무1패로 16강 진출엔 실패했지만 역대 월드컵 사상 가장 훌륭한 경기력을 보였다.
첫 경기 스페인전에선 경기 종료 직전 서정원의 극적인 동점골로 2대2 무승부를 거두면서 국민을 열광시켰다. 두 번째 경기 볼리비아전은 0대0 무승부를 거둬 실망감을 안겨줬지만 마지막 경기 독일전에서 전반 0대3으로 뒤지다 후반 황선홍과 홍명보의 연속골로 2대3 추격전을 벌이는 과정은 한국 축구팬들뿐만 아니라 세계 축구팬을 놀라게 한 일대 사건이었다.
홍명보가 1994 미국월드컵 독일전에서 추격골을 넣은 뒤 펄쩍 뛰어올랐다. /조선일보 DB
홍명보가 1994 미국월드컵 독일전에서 추격골을 넣은 뒤 펄쩍 뛰어올랐다. /조선일보 DB
   16강 진출 때 선수당 3000만원의 포상금이 걸린 대회였다. 선수들은 역대 최고 포상금이 걸린 이 대회에서 16강 진출에 대한 열의를 보였다. 더구나 질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첫 경기서 스페인과 비기자 대표팀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하지만 반드시 이겨야했던 볼리비아전에서 무승부를 거두면서 선수단 분위기는 뚝 떨어졌다. 하여튼 미국 월드컵 대표팀은 역대 어느 대회보다 박진감을 보였다는 데 공감한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16강 당시보다 더 멋진 경기력을 보였다는 것이 축구 전문가들의 평가다. 스페인·독일·볼리비아와의 조별리그를 통해 한국 축구팀은 한국 축구의 진면목을 보였다. 현장에 있었던 기자의 생각도 마찬가자였다. 독일과의 경기는 대표팀 역대 최고의 경기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YS는 대표팀 경기에 상당히 만족한 듯했다. 선수단을 격려하면서 미소짓던 YS는 볼리비아와 비긴 데 대해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YS는 대표팀 격려사에서 “월드컵 기간 중 남북 갈등 고조로 전쟁 가능성 보도가 나오는 등 국민이 불안감을 갖고 있었지만 축구팀의 선전에 긴장을 풀 수 있었다”고 했다. 또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일성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아쉬움이 있었다”며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재밌게 소개했다.

하지만 금세 16강전 제물로 여겼던 볼리비아와의 경기로 화제를 돌렸다. YS는 헤드 테이블에 앉은 골키퍼 최인영에게 “최인영 선수! 왜 우리 선수에게 볼을 줘야지 볼리비아 선수에게 볼을 던져 위기를 자초했누”라며 나무라듯 말했다. 그 장면은 볼리비아 경기에서 실점 위기를 당할뻔한 최악의 순간이었다.

최인영은 YS 지적에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너무 긴장했었다”고 답했다.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를 지켜본 코칭스탭과 선수들 모두 박장대소했다. 최인영은 대표팀 주장이었지만 대회 동안 경기장 분위기에 압도돼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 결국 독일과의 마지막 경기 후반에 이운재로 교체됐다.

훗날 미국 월드컵 대표팀 사령탑이었던 김호 감독은 “2무1패로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는데도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미국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며 YS의 축구 열정을 소개했다. 김 감독은 “김 대통령이 앞으로 한국 축구가 어떻게 해야 조 예선(16강)을 통과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1996년 5월 27일 잠실운동장에서 벌어진 유벤투스 초청경기에 앞서 김영삼 대통령이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1996년 5월 27일 잠실운동장에서 벌어진 유벤투스 초청경기에 앞서 김영삼 대통령이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김 감독은 “많은 선수를 육성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프로축구팀이 많아야(당시 6개 팀) 한다고 했다”며 “김 대통령의 힘이었는지 이듬해 1995년 삼성팀이 창단됐고 내가 창단 감독으로 가게 됐다”는 일화도 전했다.

YS는 평소 공직자에게도 축구의 예를 들기도 했다. 집권 당시 사정 여파로 위축된 공직사회를 격려하기 위해 과천정부 제2종합청사를 방문, 재무부 등 경제부처 국장(2~3급) 68명과의 오찬 자리에서도 “공직사회에서 국장들은 축구로 말하면 허리에 해당한다”며 “일본에서 총리 없이 한 달이 갈 수 있는 것도 국장급이 깨끗하고 당당하고 능력 있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YS가 1996년 6월 23일 서귀포시에서 하시모토 일본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기념하기 위해 서명한 축구공을 교환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YS가 1996년 6월 23일 서귀포시에서 하시모토 일본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기념하기 위해 서명한 축구공을 교환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YS는 미국 월드컵 때 선수들의 활약에 고무됐는지 월드컵 유치에도 적극적이었다. YS는 당시 정몽준 축구협회 회장을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보내 월드컵 개최에 만전을 기하도록 했다. 결국 YS 때 월드컵 유치에 성공했다. 대회는 김대중(DJ) 집권 때 개최됐지만 월드컵 유치에 큰 기여를 한 셈이다. DJ는 2002년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독일과의 월드컵 4강전에 YS 부부를 초청해 부부동반으로 나란히 경기를 관전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