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좋아서 전합니다.
에피소드 1. 겨울에도 씨를 뿌리는 사람들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54살입니다. 가정이 없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아 독신입니다. 자녀도 없고 부모도 없고 친척도 없습니다. 공부도 하지 못 하였습니다. 중국집에 취직하여 오토바이를 타고 자장면 배달하는 배달원입니다. 한달에 70만원 받는 것이 전부입니다. 재산이 없어 겨우 한명 누우면 꽉 차는 쪽방에서 혼자 잠만 자고 있습니다. 이 분을 계절로 말하면 봄 일가요? 여름일가요? 가을일가요? 겨울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겨울입니다. 인생의 겨울입니다. 그의 이름은 김 우수입니다. 지난 9월 23일 중국집에서 자장면 우동을 배달하던 중 승용차와 충돌하며 병원에서 실려 갔습니다.
25일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 명박 대통령과 김 윤옥 여사가 조문을 갔습니다. 나경원, 등 정계 거물들이 그의 장례에 참여하였습니다. 그의 죽음이 왜 온 국민의 관심을 끌었을 가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도 매월 5만원-10만원을 어린이 재단을 통하여 소년소녀 가장을 도왔습니다. 2006년부터 쉬지 않았습니다. 보험 4000만원짜리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으면 그 돈을 타서 어린이를 돕게 하였습니다. 어린이 재단 후원회장 최불암 이 상주 역할을 맡아 장례를 주도하였습니다.그의 영정 앞에는 그에게 도움을 받은 아이들이 애도하는 편지가 쌓였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라고 항상 격려하여 주시던 아저씨를 가슴에 묻고 평생 살아가겠습니다.” 대통령 영부인 김윤옥 여사가 영정 앞에서 말했습니다. “기부나 봉사는 돈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잘 보살펴 드리십시다.” 이명박 대통령도 고인 앞에서 말했습니다.“ 고인은 가진 것을 나눔으로서 그것이 더욱 커지고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진정한 나눔의 삶을 실천으로 보여 주었다.” 그가 그렇게 죽은 후 어린이 재단 홈페이지에는 기부가 꼬리를 이었습니다. 댓글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천사 중국집 배달원 아저씨의 뜻을 이어 기부를 시작하겠습니다." 인생의 겨울에 이렇게 많은 씨를 꾸준히 뿌리고 나니 아름다운 마침이 되었습니다. 김우수 씨는 겨울에도 씨를 뿌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에피소드2. 건강의 겨울에도 씨를 뿌리는 사람
김 영하 목사가 쓴 책 <하늘을 담는 사람들> 속에 나오는 감동스러운 이야기입니다. 86세 할아버지는 아침마다 일찍 일어납니다. 자기가 스스로 수프를 만듭니다. 20 km 떨어진 아내 묘를 매일 아침 찾아갑니다. 바이올린과 수프를 가지고 갑니다. 수프를 아내 묘 앞에 놓고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묘를 어루만집니다. 그리고 아내를 목메어 부릅니다. 그리고 돌아옵니다. 이렇게 56살부터 30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날 때 그렇게 하여 주기로 약속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할아버지는 한번 한다고 한 것은 죽기까지 지키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86세가 되었어도 그렇게 합니다. 이것이 건강의 비결이 되었습니다. 슬픔을 이기는 길이 되었습니다. 건강의 겨울에도 씨를 뿌려야 합니다. 몸이 편할수록 건강은 나빠집니다. 두 다리가 의사입니다. 에피소드3.. 나이의 겨울에도 씨를 뿌리는 사람.
소년기가 인생의 봄이라면 청년기는 인생의 여름입니다. 장년기는 열매를 따먹은 인생의 가을입니다. 노년기는 인생의 겨울입니다. 세계 역사상 최대 업적의 35%는 60-70대에 의하여 성취되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23%는 70-80세 사람에 의하여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6%는 80대 인물에 의하여 성취되었습니다. 결국 역사적 업적의 64%가 60세 이상의 인물들에 의하여 성취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일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나이와 관계가 없습니다. 나이의 겨울에도 우리는 씨를 뿌려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사진을 중심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잡지가
둘 있습니다. national geographic과 life 지입니다. 얼마 전에 라이프지에 실린 사진입니다. 공항 대합실에 아주 가난하게 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앉아서 비스킷을 먹는 장면입니다. 가난하기에 비싼 음식을 주문하지 못 하였습니다. 비스킷과 차를 하나씩 주문하였습니다. 그리고 비스킷 반을 잘라 할아버지가 먹었습니다. 그리고 틀니를 빼어 닦아서 할머니에게 주었습니다. 할머니가 그 틀니를 끼고 나머지 반을 먹는 장면의 사진입니다. 너무나 가난하여 따로따로 틀 이를 하지 못 하고 하나를 가지고 교대로 사용하는 장면입니다. 비스킷도 하나요, 차도 한 잔이요, 틀니도 한 개요, 몸도 하나요, 생각도 하나요, 모두가 하나였습니다. 이런 뜨거운 사랑으로 겨울에도 씨를 뿌려야 합니다.
에피소드4.. 날마다 한강 다리를 건너던 사람
상고를 졸업하고 전자회사 영업 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김우준 씨는 십 년 동안 성실히 일하여 모은 돈과 주변사람들의 돈을 빌려 조그만 가전 제품 대리점의 사장이 되었다. 그런데 사업이 안정되고 빌린 돈도 거의 다 갚아 갈 즈음, 사기를 당해 전재산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남은 것이라고는 아는 사람으로 부터 빌린 빚뿐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 빚을 갚아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가전제품 외판원으로 나섰는데, 날마다 방문 판매를 하면서 버는 돈중에서 하루에 오천 원씩 빚을 갚아 가기로 했다. 매일 저녁 그는 오천원을 주머니에 넣고 한강다리를 건너 용산까지 돈을 빌려 준 사람의 집을 찾아가 돈을 갚은 뒤, 온 길을 되돌아 집으로 왔다. 하루도 빠짐없이 강바람을 맞으며 한강대교 위를 걸어다니면서 그는 언제가는 반드시 사업을 다시 일으키리라는 희망의 싹을 가슴속에 키워갔다. 몇 년이 지나 드디어 빚을 다 갚은 그는 재기할 계획을 차곡차곡 진행시켰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성실성을 눈여겨본 전자회사 판매 이사가 그의 신용을 믿고 물건을 대줄테니 다시 유통업을 해보라고 권했지만 자금이 부족했던 그는 돈이 좀더 모일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 즈음 우연히 예전에 오천 원씩 돈을 갚았던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둘은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얘기 끝에 김우준 씨의 처지를 알게 된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당신이 오천원씩 빚을 갚기 시작했을 때, 나는 며칠 지나면 그만둘 거라 생각했소, 하지만 당신은 끝까지 해냈고, 그 사이 당신에 대한 내 믿음도 쌓여갔소. 나는 언젠가 당신이 꼭 재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오. 새로 출발한다니, 내게도 출자할 기회를 주겠소?" 그 동안 그는 돈을 갚은 게 아니라 신용을 쌓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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