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인간에게 시중드는 하느님
▲ 주수욱 신부(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그 사람
혼인 잔치에 갔다가 돌아오는 사람은 분명히 술을 어느 정도 마시고 거나하게 취해서 기분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고주망태가 되어서 돌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리기사를 불러서 귀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시대는 오늘날과 같이 교통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휴대폰도 없었으니, 일가친척이 혼인 잔치에 모이면 서로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음식도 맛있고 배부르게 먹고 술도 마셨을 것입니다.
집에 돌아왔는데, 집에 일하는 사람들이 그 주인을 기다리고 있으면 기분이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깜깜한 밤에 집에 대문을 혼자 열고 들어와서 어슬렁거리며 방에 들어가서 잠자리에 드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어딘가 모르게 청승맞은 느낌이 드는 것을 지워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기특하게도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가 대문을 열고 맞이해 주면, 귀가한 사람의 기분이 참 좋았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 그 주인이 고용된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서로 아껴 주는 사이였음이 분명합니다. 주인은 일하는 사람들의 사정을 헤아려 주고 세심하게 배려하고, 그래서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용된 종이라기보다, 자신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주인을 자상한 아버지처럼 여겼을 것입니다.
종들을 식탁에 앉히고 시중드는 주인처럼
이제 그 주인이 뜻밖에도 일하는 사람들에게 시중을 들고 있습니다. 종들의 시중을 드는 그 주인의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노예처럼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술기운이 좀 돌아서 불그레한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종들을 바라보는 그 눈길은 자비로운 주인의 그것입니다.
주인이 종이 되고, 종이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이 되고, 창조주 하느님이 피조물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인간을 위해서 봉사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시중드는 하느님이십니다.
이 세상에 사는 우리는 지금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이 세상은 인간이 주인인 것 같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떠나서 하느님이 없는 것처럼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정신을 차리고 하느님을 믿고 보면, 하느님께서 구원해 주시는 그 극적인 체험을 조금씩 해가면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된 하느님의 구원이 지속되고 있으며, 하느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그 완성의 때를 향해서 우리는 희망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집트에서 노예로 있던 히브리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이집트에 열 번째 재앙을 내리면서 마련하신 그 파스카 밤을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가 인도하는 이집트로부터 해방의 길에 들어서면서 그들은 옷깃을 여미고 자유를 향해서 황급히 길을 나섰습니다.
주인이 종의 밥상을 차려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죄와 죽음으로부터 하느님의 참된 구원에 초대된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리고 뒤로 미루지 않으면서 하루하루를 진지하게 살아갑니다. 비록 어려움을 겪고 고통스럽더라도, 의미가 넘치고 보람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은 십자가를 거치며 이미 시작돼 완성의 때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기쁨을 간직하면서, 우리는 인생의 많은 고통과 위협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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