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꼴찌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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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수욱 신부(서울 대방동본당 주임) |
세상은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두 1등을 하려고 죽도록 노력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1등을 하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치열한 경쟁에 들어갑니다. 평생 경쟁하지만 정작 한 사람도 그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 이래로 현대처럼 교육의 기회가 흘러넘치게 제공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모두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인간의 성숙함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생존 투쟁의 장이 돼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절망감은 이루 다 말할 것도 없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참된 행복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꿈과 이상이 사라지고 더 많은 소유라는 신기루를 좇으며 불나방처럼 죽어가는 사회가 돼버렸습니다. 한국 사회뿐 아니라 온 세계가 희망을 잃고 망연자실한 채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하느님을 떠난 인간이 안고 있는 깊은 문제입니다.
흙수저 예수님
그런데 그리스도 신자들은 십자가 밑에 모입니다. 십자가는 꼴찌임을 강력하게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꼴찌가 되셨습니다. 하느님은 흙수저를 문 채 마구간에서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고향 나자렛은 변두리 세계입니다. 거기서 자라고 변두리 사람의 억양과 말투로, 말씀도 단순하게만 하셨습니다. 그분은 수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래아 호숫가를 중심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주로 만난 사람들은 병자, 귀신들린 사람, 배고픈 사람들,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치범으로 몰려서 사형수로 죽었습니다. 흙수저를 끝까지 문 채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구원하기 위해서 아드님을 보내셨는데, 남들이 부러워하는 금수저 대신 흙수저를 안긴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기록하듯이, 하느님께서는 흙수저를 문 사람들을 항상 우선하여 선택하십니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영광의 때’라고 매우 강조합니다. 카나 혼인잔치에서는 성모 마리아에게 서운하게 대답하면서 ‘저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라고 모호한 말씀을 하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능력을 발휘하시어 아드님도 부활시키셨고, 인간을 모두 부활에 초대하셨기 때문에 하느님 영광의 때를 작정하고 준비하신 것입니다.
여종으로 자처하신 성모 마리아
성모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하느님을 찬송하고 기뻐하면서 자신을 비천한 여종으로 자처하셨습니다. 가난하게 사는 것을 기꺼이 선택하신 성모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동정녀로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자를 자신의 태중에 모셨습니다. 능력을 발휘하시는 하느님께서 성모님 안에서 큰일을 하시고, 미천한 이를 한없이 끌어올리십니다. 성모 승천이 이것을 말해줍니다.
당시 유다인 사회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바오로 사도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미련이 없었습니다.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길 정도였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부활의 삶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밑에 모이는 교회는 2000년 역사 속에서 항상 꼴찌가 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많은 성인 성녀들을 기리는 아름다운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교회는 이 꼴찌들이 첫째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성경을 충실하게 읽지 않는 교회는 이 복음 정신의 핵심을 놓치고 유혹에 빠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의 유혹을 물리치신 것과 달리 유혹에 빠진 교회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한국 순교자들이 그 당시 사회에서 분명히 꼴찌의 길을 가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꼴찌가 돼야 할 차례입니다. 적당히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성모님에게 성자를 잉태시키신 성령께서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도 이끄셨습니다. 그렇게 성령께서 이끄셔야 우리도 그 복음적 꼴찌가 되고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진정으로 세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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