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지도에서 사라졌던 나라가 명심할 일
한-미, 血盟이란 말보다 양국 國益 절충이 중요
미-중 갈등 시대 버텨낼 인내와 국력 키워야
강대국에 둘러싸인 나라가 독립과 존엄을 지켜나가기는 쉽지 않다. 한 걸음 삐끗하면 지도에서 사라진다. 한반도는 1910년에서 1945년까지 36년 세월 세계지도에 'JAPAN'으로 표기(表記)됐다. 16세기 무렵 중부 유럽 대국(大國)이던 폴란드도 국경을 맞댄 강대국 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에 의해 몇 차례 국토가 분할되다가 1795년 지도에서 사라졌다. 1918년 세계 제1차 대전 종전(終戰)과 함께 123년 만에 나라를 되찾았으나 1939년 독일과 소련이 동서 양쪽에서 공격해오자 또다시 지도에서 사라졌다. 폴란드 멸망 원인은 수구(守舊)·혁명 세력 간 국론(國論) 분열과 국제 정세 오판(誤判)이었다. 주변 강대국들은 서로 다투다가도 폴란드 분할 문제에선 언제 다퉜느냐는 듯 쉽게 합의(合意)를 이뤘다.
최강대국 미국 국민의 상당수는 인도네시아가 인도 곁에 있는 나라인 줄 안다. 미국 청년 5만4260명이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는데도 한국이 일본 북쪽에 있는지 남쪽에 있는지 모르는 미국인이 꽤 된다. 그러나 지도에서 사라졌던 역사를 짊어진 나라 국민은 그럴 처지가 못 된다.
브레진스키는 1977년부터 4년간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 세계 정치를 주물렀다. 그는 퇴임 후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과 '제국의 선택(The Choice)'이란 책을 냈다. 책 속에서 21세기 미국의 세계 전략을 철두철미 강대국의 눈(眼)으로 들여다보며, 한국의 자부심(自負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국 운명을 강대국의 종속 변수(變數)처럼 취급했다. 강대국 편집증(偏執症)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수수께끼는 브레진스키가 '강대국 간 합의'에 의해 국토가 세 번 분할되고 나라가 두 번 지도에서 사라졌던 폴란드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면 풀린다. 그의 혈관 속에는 강대국 간 냉혹한 거래 때문에 속절없이 나라를 잃었던 망국민(亡國民)의 강박관념이 흐르고 있다.
2005년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정치 이론가 25명을 선정했다. 이 리스트에서 5위를 차지한 미어세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강대국 국제 정치의 비극(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이란 자신의 책 서문에 이렇게 썼다. "한국과 폴란드가 강대국에 의해 한때 지도에서 사라졌던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이 나라를 지키려면 동맹의 구조, 세력 균형, 강대국의 본성과 행동·핵무기라는 복잡한 문제를 심사숙고(深思熟考)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사드(THAAD) 배치 발표 이후 한국에서 벌어져 온 일들은 '이 나라가 100년 전 지도에서 사라졌던 나라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가'라는 의심이 들게 만든다. 정부는 습관적으로 결정·발표하고, 야당은 관성(慣性)에 따라 반대하고, 전문가는 공론(空論)으로 일부 여론에 영합하고, 지역 주민은 이해(利害)에 떠밀려 머리띠를 동여맨다.
현재의 한·미 관계에서 혈맹(血盟)이란 단어에만 지나치게 과다(過多)한 의미를 부여하면 착각을 불러올 수 있다.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를 과대평가하고 이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미국은 한국을 떠나지 못한다는 식(式)으로 미국을 무골호인(無骨好人) 취급하는 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동맹이란 국익을 같이하는 나라가 한 지붕 아래 동거(同居)하는 상태다. 결혼과는 다르다. 한·미 안보조약은 한 나라가 조약 해지(解止)를 상대국에 통고하면 1년 후 자동 종료된다. 사실 사드의 주목적은 주한 미군과 미군 장비를 북한의 선제(先制)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것이다. 한국 방어를 위해 나와 있는 자국(自國) 병사를 보호하는 장비 도입에 한국이 반대하면 미국 내에 어떤 여론이 일지는 불 보듯 하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가치는 망국(亡國)을 맞았던 1910년대나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대와는 크게 다르다. 그러나 한국 국익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과 미국 국익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의 차이가 여전히 크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개인 관계에서도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동맹국이라도 상대 국가 탓에 자국(自國)의 이익에 절실하지 않은 분쟁에 휘말리지 않나 은근히 걱정한다. 다른 한편 도움이 필요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동맹국에 버림받지 않을까를 우려하는 것이 국제관계이기도 하다. 한·미 관계에도 이런 양면(兩面)이 작용하고 있다.
미·중 관계가 견제 국면으로 넘어가고 사드에 대한 중국의 과잉 반응은 그 연장선에 있다. 중국에 한국이 사드 배치 결정을 불러온 것이 북한 핵과 미사일이라는 점을 이해시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진실을 알고도 모른 체하는 상대를 납득시키긴 쉽지 않다. 폴란드 역사에서 보듯 주변 강대국이 한국 어깨너머로 한국 문제에 손쉽게 합의에 다다르는 것이 반드시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미·중 갈등과 견제 시대를 버텨낼 전략적 인내(忍耐)와 국력을 함께 키워갈 필요가 있다.
최강대국 미국 국민의 상당수는 인도네시아가 인도 곁에 있는 나라인 줄 안다. 미국 청년 5만4260명이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는데도 한국이 일본 북쪽에 있는지 남쪽에 있는지 모르는 미국인이 꽤 된다. 그러나 지도에서 사라졌던 역사를 짊어진 나라 국민은 그럴 처지가 못 된다.
브레진스키는 1977년부터 4년간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 세계 정치를 주물렀다. 그는 퇴임 후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과 '제국의 선택(The Choice)'이란 책을 냈다. 책 속에서 21세기 미국의 세계 전략을 철두철미 강대국의 눈(眼)으로 들여다보며, 한국의 자부심(自負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국 운명을 강대국의 종속 변수(變數)처럼 취급했다. 강대국 편집증(偏執症)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수수께끼는 브레진스키가 '강대국 간 합의'에 의해 국토가 세 번 분할되고 나라가 두 번 지도에서 사라졌던 폴란드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면 풀린다. 그의 혈관 속에는 강대국 간 냉혹한 거래 때문에 속절없이 나라를 잃었던 망국민(亡國民)의 강박관념이 흐르고 있다.
2005년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정치 이론가 25명을 선정했다. 이 리스트에서 5위를 차지한 미어세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강대국 국제 정치의 비극(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이란 자신의 책 서문에 이렇게 썼다. "한국과 폴란드가 강대국에 의해 한때 지도에서 사라졌던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이 나라를 지키려면 동맹의 구조, 세력 균형, 강대국의 본성과 행동·핵무기라는 복잡한 문제를 심사숙고(深思熟考)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사드(THAAD) 배치 발표 이후 한국에서 벌어져 온 일들은 '이 나라가 100년 전 지도에서 사라졌던 나라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가'라는 의심이 들게 만든다. 정부는 습관적으로 결정·발표하고, 야당은 관성(慣性)에 따라 반대하고, 전문가는 공론(空論)으로 일부 여론에 영합하고, 지역 주민은 이해(利害)에 떠밀려 머리띠를 동여맨다.
현재의 한·미 관계에서 혈맹(血盟)이란 단어에만 지나치게 과다(過多)한 의미를 부여하면 착각을 불러올 수 있다.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를 과대평가하고 이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미국은 한국을 떠나지 못한다는 식(式)으로 미국을 무골호인(無骨好人) 취급하는 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동맹이란 국익을 같이하는 나라가 한 지붕 아래 동거(同居)하는 상태다. 결혼과는 다르다. 한·미 안보조약은 한 나라가 조약 해지(解止)를 상대국에 통고하면 1년 후 자동 종료된다. 사실 사드의 주목적은 주한 미군과 미군 장비를 북한의 선제(先制)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것이다. 한국 방어를 위해 나와 있는 자국(自國) 병사를 보호하는 장비 도입에 한국이 반대하면 미국 내에 어떤 여론이 일지는 불 보듯 하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가치는 망국(亡國)을 맞았던 1910년대나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대와는 크게 다르다. 그러나 한국 국익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과 미국 국익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의 차이가 여전히 크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개인 관계에서도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동맹국이라도 상대 국가 탓에 자국(自國)의 이익에 절실하지 않은 분쟁에 휘말리지 않나 은근히 걱정한다. 다른 한편 도움이 필요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동맹국에 버림받지 않을까를 우려하는 것이 국제관계이기도 하다. 한·미 관계에도 이런 양면(兩面)이 작용하고 있다.
미·중 관계가 견제 국면으로 넘어가고 사드에 대한 중국의 과잉 반응은 그 연장선에 있다. 중국에 한국이 사드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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