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갑식의 세상읽기]
"반공소년 이승복을 뿌리 뽑아라!"
입력 : 2016.10.15 03:04
반공소년 이승복 동상 거의 철거
'남북 화해의 걸림돌' 취급되며 '이승복 기사 조작' 허위 판결에도 우파의 어설픈 北 끌어안기 틈타 1990년대부터 사라지기 시작
소년의 머리를 돌로 내리쳤던 48년전 북한은 수만배 무시무시한 핵폭탄 들고 우리를 노리고 있는데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무이예술관이 있다. 옛 무이초등학교가 폐교(廢校)한 터로, 초가을이면 옆 들판이 눈 내린 듯 하얀 메밀꽃 천지로 변한다. 화가 조각가 도예가들이 곳곳에 작품을 전시해놓았는데 여기가 학교 자리임을 알 수 있는 상징이 운동장 귀퉁이에 하나 남아 있다. '반공소년' 이승복(李承福) 동상이다. 동상 앞에는 현대식 조각이 한 쌍 있는데 셋이 삼위일체(三位一體)처럼 어울린다. 조각가가 조화를 고려해 만든 것 같았다.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옛 지수초등학교에도 50대 이상이 학교 다닐 적 보았던 추억의 3종 세트, 이승복-이순신 장군-책 읽는 남매 동상이 있다. 폐교 자리는 으스스할 법한데 동상들과 이 학교 출신 삼성 이병철(李秉喆), LG그룹 구인회(具仁會) 창업주가 가꿨다는, 줄기 붙어 있는 소나무가 어울린 모습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전국을 취재 다니다 만나는 이승복 혹은 이순신 장군 동상의 작품 수준을 비교해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그런 이승복 동상이 서울의 초등학교에서 거의 다 철거됐다. 서울의 초등학교 600곳 중 딱 두 군데 남았다. 누가 그런 일에 공력(功力)을 들이나 알아보니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울시의원이라고 한다. 그가 전부를 다 없앤 것은 아니다. 이승복 동상은 1990년대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이 흥미롭다.
1988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북한을 동반자로 삼자고 제안한 '7·7'선언 이후 이승복 동상은 '남북 화해의 걸림돌'처럼 취급됐다. 1997년에는 교과서에서 이승복이란 이름이 사라졌다. 1년 뒤인 1998년 좌파들은 총력을 기울여 '이승복 기사 조작설'을 제기했다. 영혼 없는 우파도 왜곡의 댄스에 가세했다.
그들이 '근거'라고 제시한 게 1992년 한국기자협회가 발행한 잡지 '저널리즘'에 나온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신화 이렇게 조작됐다"라는 기사다. 8년간의 기나긴 소송 끝에 좌파들의 주장은 법원에서 허위로 판결 났다. 이런 거짓말을 진실인 양 세상에 퍼뜨린 이들에게도 유죄(有罪) 판결이 내려졌다.
이러는 사이 이승복은 살아서는 북한이 보낸 무장공비의 대검(帶劍)에 입이 찢긴 채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죽어서도 좌파 세력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고 말았다. 대한민국이란 땅에서 태어난 죄 때문에 고작 9년 살다 간 인생치고 이렇게 팔자(八字) 사나운 삶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승복 동상 파괴 세력은 멈출 줄 모른다. 올 8월 31일 서울시의회에서 앞서 거론한 민주당 시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냉전 독재정권 시절에 만들어진 이승복 동상이 21세기 교정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많다." '반공주의'에 비판적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다음처럼 답했다. "저도 그렇게 남아 있는지는 잘 몰랐네요. 한번 체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이승복 부분은 논란도 된 바가 있었지요." 그러자 시의원은 다시 조 교육감에게 철거를 채근한다. "제가 사진을 찍어왔어요. 아주 잘생긴 동상인데 문구를 보면 그렇습니다. 굉장히 과격한 표현들이 많이 있어요."
내가 놀란 것은 고작 2개 남은 동상을 교육감이 '그렇게 남아 있는지'라고 표현한 부분이다. 뇌리에 이승복이란 이름 자체를 박멸의 대상으로 못 박지 않은 이상 나올 수 없는 말이다. 이승복 동상이 없어진 과정을 복기해보면 잘 짜인 한 편의 시나리 오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파의 어설픈 북한 끌어안기를 틈타 1992년부터 시작된 좌파의 '이승복 지우기'가 24년째 집요하게 이어진 것이다. 소년의 입을 찢고 머리를 돌로 내려친 48년 전의 북한은 사라졌는가? 내 생각에 북한은 지금 칼과 짱돌보다 수만 배는 더 무시무시한 핵폭탄을 손에 쥐고 우리의 입을 찢고 머리를 뭉갤 궁리를 하고 있을 뿐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옛 지수초등학교에도 50대 이상이 학교 다닐 적 보았던 추억의 3종 세트, 이승복-이순신 장군-책 읽는 남매 동상이 있다. 폐교 자리는 으스스할 법한데 동상들과 이 학교 출신 삼성 이병철(李秉喆), LG그룹 구인회(具仁會) 창업주가 가꿨다는, 줄기 붙어 있는 소나무가 어울린 모습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전국을 취재 다니다 만나는 이승복 혹은 이순신 장군 동상의 작품 수준을 비교해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그런 이승복 동상이 서울의 초등학교에서 거의 다 철거됐다. 서울의 초등학교 600곳 중 딱 두 군데 남았다. 누가 그런 일에 공력(功力)을 들이나 알아보니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울시의원이라고 한다. 그가 전부를 다 없앤 것은 아니다. 이승복 동상은 1990년대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이 흥미롭다.
1988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북한을 동반자로 삼자고 제안한 '7·7'선언 이후 이승복 동상은 '남북 화해의 걸림돌'처럼 취급됐다. 1997년에는 교과서에서 이승복이란 이름이 사라졌다. 1년 뒤인 1998년 좌파들은 총력을 기울여 '이승복 기사 조작설'을 제기했다. 영혼 없는 우파도 왜곡의 댄스에 가세했다.
그들이 '근거'라고 제시한 게 1992년 한국기자협회가 발행한 잡지 '저널리즘'에 나온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신화 이렇게 조작됐다"라는 기사다. 8년간의 기나긴 소송 끝에 좌파들의 주장은 법원에서 허위로 판결 났다. 이런 거짓말을 진실인 양 세상에 퍼뜨린 이들에게도 유죄(有罪) 판결이 내려졌다.
이러는 사이 이승복은 살아서는 북한이 보낸 무장공비의 대검(帶劍)에 입이 찢긴 채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죽어서도 좌파 세력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고 말았다. 대한민국이란 땅에서 태어난 죄 때문에 고작 9년 살다 간 인생치고 이렇게 팔자(八字) 사나운 삶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승복 동상 파괴 세력은 멈출 줄 모른다. 올 8월 31일 서울시의회에서 앞서 거론한 민주당 시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냉전 독재정권 시절에 만들어진 이승복 동상이 21세기 교정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많다." '반공주의'에 비판적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다음처럼 답했다. "저도 그렇게 남아 있는지는 잘 몰랐네요. 한번 체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이승복 부분은 논란도 된 바가 있었지요." 그러자 시의원은 다시 조 교육감에게 철거를 채근한다. "제가 사진을 찍어왔어요. 아주 잘생긴 동상인데 문구를 보면 그렇습니다. 굉장히 과격한 표현들이 많이 있어요."
내가 놀란 것은 고작 2개 남은 동상을 교육감이 '그렇게 남아 있는지'라고 표현한 부분이다. 뇌리에 이승복이란 이름 자체를 박멸의 대상으로 못 박지 않은 이상 나올 수 없는 말이다. 이승복 동상이 없어진 과정을 복기해보면 잘 짜인 한 편의 시나리
우파의 어설픈 북한 끌어안기를 틈타 1992년부터 시작된 좌파의 '이승복 지우기'가 24년째 집요하게 이어진 것이다. 소년의 입을 찢고 머리를 돌로 내려친 48년 전의 북한은 사라졌는가? 내 생각에 북한은 지금 칼과 짱돌보다 수만 배는 더 무시무시한 핵폭탄을 손에 쥐고 우리의 입을 찢고 머리를 뭉갤 궁리를 하고 있을 뿐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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