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8.08 03:03
[英 테이트미술관 보존학자 최윤선, 11일 개막 '누드 명작展' 위해 방한]
보존학자들 중 유일한 한국인… 유수 미술관 거친 20년 베테랑
"名作, 많은 이들에 보여주고파 위험 무릅쓰면서 가져왔어요"
최윤선(45)씨는 영국국립미술관 테이트(TATE)에서 일하는 보존학자다. 테이트에서 일하는 55명 보존학자 중 유일한 한국인인 최씨는 보존학과에서 회화와 사진을 관리하는 팀의 책임자다.
오는 1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에서 개막하는 '영국국립미술관 테이트명작전―누드'전을 위해 서울에 왔다. 최씨는 "로댕, 피카소, 데이비드 호크니를 아우르는 이번 '누드 명작전'은 세계 근현대미술의 최고 컬렉션을 갖춘 테이트 소장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가들과 작품들 120여점으로 구성됐다"며 엄지를 들어올렸다.
최씨는 작품이 운송되고 설치되는 중에 만에 하나라도 생길 균열과 파손을 치료하기 위해 런던에서 날아왔다. "로댕의 '키스'는 3.3t에 워낙 큰 작품이라 신경 쓰이지만, 사실 가장 다치기 쉬운 건 에드가르 드가의 파스텔 작품이에요. 작은 균열만 생겨도 페인팅 표면이 떨어져나가니까요. 드가의 파스텔 작품을 2점이나 보낸다기에 보존학과에선 반대했는데, 테이트의 제1 원칙이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작품을 보여줘야 한다'는 거라 이번 전시에 '키스'와 동행하게 된 겁니다."
보존학으로 유명한 런던 캔버웰 예술대학에서 학사·석사 과정을 마친 뒤 옥스퍼드대학 박물관, 대영도서관 등을 거쳐 7년 전 테이트 미술관으로 왔다. 유수의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일했지만, 그는 "테이트만큼 기획전과 국제 교류에 열심인 미술관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고 했다. "대영박물관이 1년에 3~4개 기획전을 할 때 테이트는 20건이 넘는 전시를 기획합니다. 대영박물관이 소장품의 5%만 관람객에 보여준다면 테이트는 40~50%를 보여주지요. 상설전이라도 6개월 전과 후의 전시된 작품들이 다르니 관람객이 끊임없이 들어옵니다. 테이트가 세계 순회전을 할 수 있는 것도 작품의 운송과 보존에 뛰어난 노하우를 갖췄기 때문이지요."
20년 넘게 보존학자로 일하면서 크고 작은 일이 있었지만, 테이트의 아이콘이자 앙리 마티스의 명작인 '달팽이(Snail)' 때문에 고생한 일화는 잊을 수 없다. "가로 세로 3m에 달하는 크기의 작품을 보존 처리한 뒤 유리를 교체하고 액자를 바꾸는 일이었죠. 크레인까지 동원해 유리를 가져와 달았는데 한 번은 거꾸로 달아서, 또 한 번은 유리의 브랜드 마크가 마티스의 사인(sign)을 가리는 바람에 재작업을 했지요. 기껏 다 끼워놨더니 이번엔 또 유리에 작은 스크래치가 나 있는 거예요. 별것 아닌 실수가 큰 공사로 이어지는 게 저희가 하는 일이랍니다(웃음)."
워낙 꼼꼼한 성격이라 명화를 치료하고 보존하는 일이 적성에 딱 맞지만, 먼지 한 톨 못 보는 청결강박증도 생겼다. 같은 보존학자라도 종이(paper) 분야가 제일 보수적이고 조각 분야 학자들은 통이 크고 터프하다고도 했다. 보존학자로서 테이트미술관에서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지위는 보존학과장. "하지만 행정 업무보다는 학자로서 작품들과 늘 가까이 있는 게 더 행복하다"고 했다. 아일랜드 출신 고고학자와 결혼해 열한 살 딸과 일곱 살 아들을 두었다. "딸애는 아기 때부터 박물관에 데리고 다녀서 그런지 어두컴컴한 박물관을 집보다도 더 편안히 여긴답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