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삼 신부(수원교구, 아프리카 수단 선교)
사순절이 시작되고 건기가 돼 길이 마르자 그동안 미뤄왔던 공소방문을 시작했다. 공소는 자동차로 들어갈 수 없어 오솔길을 따라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미사도구와 간단한 도구들을 챙겨서 길을 떠났다. 하루는 아무것도 없는 공소건물 맨바닥에서 잠을 잤다가 며칠 동안 목이 뻣뻣하고 움직이지 않아 고생을 좀 했다. 동네 펌프에서 떠온 물로 대강 세수를 하고 그들이 대접하는 음식을 함께 손으로 먹었다. 공소 신자들은 신부님이 오셨다고 귀한 닭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공소에 가면 나무 그늘 밑에서 죽 앉아서 신부를 기다리는 이는 늘 어린이들뿐이다. "어른들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다들 바쁘다고 한다. "신부님 저희에게 소가 얼마나 중요한 줄 아십니까?" 소를 돌보러, 잃어버린 염소를 찾으러, 먹을 물고기를 잡으러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미사 때도 유아세례를 주다 보면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진다. "아니, 예식이 안 끝났는데 엄마랑 아기가 어디 갔느냐?"고 물으며 둘러보면 저 멀리서 돌아다니고 있다. 그럼 다시 불러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도 '그래 선교사의 첫 번째 덕목은 '인내심'이니까'라며 혼자 달래야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섭씨 40도를 넘는 열풍과 모래먼지 속을 달리면 그날 밤은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어린이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갈라진 땅을 달리고, 새끼손가락길이만 한 가시덤불에 찔려가며 두세 시간을 달려가 단 두세 명 신자들 밖에 못 만나도 희망을 포기할 순 없다. '희망을 심는 사람이 희망을 포기하면 안 되지, 사랑을 가르치려는 사람이 사랑을 저버릴 순 없는 일이야'라고 속으로 수백 번은 되뇌면서…. 그러다 보면 점점 예수님의 아픔과 열정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예수님께서 머리 둘 곳조차 없이 이 마을 저 마을 가셔야 했던 이유도, 사도 바오로가 돌멩이를 맞으면서도 이방인 마을로 달려갔던 이유도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음을. 갈라지고 메마른 땅에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나무를 심는 일은, 결국 '해도 소용이 없을 거야'라는 나 자신을 이기는 일이다. 정말로 언젠가는 이 가시덤불 밖에 자라지 않는 땅에 물이 흐르는 꿈을 꾼다. 사막에서 나무를 심는 일은 '타는 땅의 바위'처럼 살아가는 삶임을 헤아린다. 나보다 주님께서 먼저 시작하신 일, 그분께서 완성하실 것임을 믿고 바라고 견디어내는 '희망'이 죽음보다 강함을 삶으로 고백하는 선교사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