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굿바이 '죤 가랑'

namsarang 2009. 7. 19. 22:43

[사목일기]

굿바이 '죤 가랑'


                                                                                                                  한만삼 신부(수원교구, 아프리카 수단 선교)


남수단 내전의 영웅 닥터 죤 가랑(1945~2005)이 헬기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아랍권인 북수단으로부터 남수단을 해방시킨 혁명적 영웅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어느 날, 아강그리알에 막 도착해 상황 파악에 정신이 없을 때 잘생긴 흑인 청년이 땀에 흠뻑 젖은 채 찾아왔다. 이름은 '죤 가랑'이고 '두오니'의 교리교사이며, 한동안 교리교사를 못했는데 이젠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찾아왔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지도를 찾아보니, 우리가 있는 곳에서 대각선으로 반대편 끝에 조그맣게 표시된 마을이었다. 어떻게 왔느냐고 물으니 60㎞ 걸어왔다고, 길을 걷다가 이틀을 숲 속 나무 밑에서 잤다고 대답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빈손으로 찾아온 그의 열정에 감동을 받았다.
 기쁘기도 하고 기특해서 그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좀 주고는 "미안하지만 전임 신부님께서 주신 명단에 네 이름이 빠져 있기 때문에 마을을 방문한 다음 상황을 파악하고 교리교사로 임명하겠으니 실망하지 말고 계속 봉사해 달라"고 부탁하고 돌려보냈다.
 그리곤 우기가 시작됐다. 교리교사 지역모임 때 교사들은 길에 물이 가득 차 위험하니 오토바이로도 갈 수 없다며 찾아가겠다던 나를 극구 말렸다. 그 후 나는 딩카말을 배우기 위해 3개월 동안 교리교사 모임에 가지 못했고, 방문단 일과 사고처리, 성탄절과 여러 가지 분주한 일로 그를 깜빡 잊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건기가 돼 공소 방문계획을 세우면서, '두오니'도 방문할 건데 죤 가랑은 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분위기가 잠시 멈칫하더니, 한 교리교사가 "신부님 죤 가랑은 죽었습니다"라는 것이었다. 난 웃으면서 "아, 닥터 죤 가랑이 돌아가신 것은 알고 있고, 교리교사 죤 가랑 말이야"하고 말했다.
 "네 그 교리교사 죤 가랑이 죽었습니다."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멍해졌다. "아니 죽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지난해 10월에 죽었습니다. 신부님 있잖아요, 수단에는 많은 질병이 있습니다…."
 그리곤 한동안 그들도, 나도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슴 한구석이 미여 왔다.
 이틀 밤을 지새우며 신부님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걸어왔던 잘생긴 청년 죤 가랑의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좀 더 일찍 서둘렀어야 했다. 그의 마을을 찾아가는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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