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삼 신부(수원교구, 아프리카 수단 선교)
아프리카 대륙의 깊은 상처 중 하나가 내전일 것입니다. 식민지 수탈의 신음에서 벗어나자마자 종족 간 내전으로 피로 얼룩진 아프리카 대륙의 화마는 남수단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남수단은 수세대에 걸친 내전으로 황폐할 대로 황폐해졌고 최근들어 평화 시기를 맞이했지만 이들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빼앗겼습니다. 전쟁은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조차 파괴하고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어린이들을 만나다가 그들 다리에 있는 주먹만 한 상처에 고름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그 상처를 바라보며 마음이 미어져 조금 남아있던 약으로 상처를 소독을 해줬니다. 그런데 상처를 치료받은 어린이들이 아무런 말없이 불쑥 일어나 가 버리는 게 아닙니까. 어린이들의 그런 행동에 오히려 제가 당황스러웠습니다. "너희는 고맙다는 말을 모르니?" "… …" 어린이들은 눈만 끔뻑이다가 어물쩍 등을 돌려 돌아갔습니다. 어린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끔 어색하게 "땅쿠유"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이들의 일상 대화에서 '고맙다'는 말은 들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왜 이들은 서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을까.' 그 의문은 몇 달 후 선교사를 위한 딩카어 수업을 통해 풀렸습니다. 이들 부족 말에는 "고맙습니다"라는 뜻을 담은 적당한 표현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람들이 그와 비슷한 말의 존재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대화 중에 사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생존이 위협받는 거친 현실과 전쟁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자신의 생존과 상관이 없기에 필요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수십 년에 걸친 전쟁의 깊은 상처로 빼앗겨버린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되찾아주고 싶어 어린이들 상처를 치료해주고 약값 대신에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받기로 했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치료비를 내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러자 그 소문이 퍼져 자주 찾아왔던 어린이들이 처음 온 아이들에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야 해!"라고 소곤거리며 알려줍니다. 이 말 한마디가 서너 시간 동안 꼼짝 못하고 어린이들 고름을 닦아주던 저의 입가에 미소를 갖게 해줬습니다. 감사할 줄 알기 시작할 때 긍정적 변화의 싹이 자라날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말 한마디가 세상을 아름답게 가꿔가는 보석 같은 말인지도 모릅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