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삼 신부(수원교구, 아프리카 수단 선교)
처음 아프리카 남수단을 답사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 세상에서 제일 새카맣게 보이는 어린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방글방글 웃으며 나를 부르는 말이 '가와자'였다. 나를 졸졸 따라오면서 계속 '가와자'라고 불러서 옆에 있는 학생에게 가와자가 도대체 무슨 뜻이냐 물으니 뜻밖에도 '백인'이라는 것이었다. 허허…. 생전 처음으로 '백인'이라는 칭호를 들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사는 마을과 동네 밖을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겐 그냥 자신들보다 피부색이 밝으면, '가와자'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남수단에 와서 졸지에 '백인 신부님'이 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부색이 다르다는 사실이 이들의 문화와 세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벽이요, 건널 수 없는 강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교구청이 있는 룸벡에 가면 어린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꺼번에 나에게 달려오면서 "와! 재키챤!(성룡)"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어디서 보았는지 내 앞에서 갖은 무술 흉내를 낸다. 처음에는 내가 중국 사람처럼 보여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재키챤이 중국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 미국사람인지 상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재키챤처럼 보이는 신부님이 자신들 곁에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던 것이었다. 영화 속에 나온 실재인물을 만나듯이 아이들이 손을 내밀고 악수하면서 기뻐할 땐 오히려 재키챤에게 고마웠다. 덕분에 아이들 손에 느껴지는 떨리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봐도 재키챤을 닮진 않았다. 누군가를 닮아야 한다면, 예수님을 닮아야겠다. 하지만 이 어린이들은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셨는지 알 턱이 없다. 하긴 예수님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엘리야나, 예언자나 세례자 요한으로 봤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겪으셨을 어려움을 헤아리게 된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기쁜 소식이 단순히 생소한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기쁨으로 체험되고 고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오해와 편견과 갈등을 이겨내셔야 했는지를 말이다. 그렇기에 누구로 무엇으로 불리든 상관할 것은 아니다. 손끝에 다가온 하늘나라를 맞이하기 위해 회개와 새로운 삶으로의 초대가 내가 뿌려야 할 복음의 씨앗일 테니까.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예수님의 사명(Mission) 또한 오늘의 복음을 살아가는 선교사 사명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