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웅 신부(제주교구 서귀포본당 주임)
신창성당에 부임한 몇 달 뒤, 본당 50주년을 맞아 주교님을 모시고 미사를 봉헌하게 됐다. 전례복방에 들어오신 주교님께 복사들을 소개하며 "이 아이들은 쌍둥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뭐가 맘에 안들었던지 복사를 맡은 쌍둥이 유미와 유리가 동시에 나를 째려보며 발길질을 해댔다. 원래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들면 누구에게든 험한 말과 발길질을 뻥뻥 해대던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처음엔 참 한심하고 난감했다. 시골에는 한부모 가정, 조손 가정 비율이 높다. 부모가 있어도 바쁘고 힘든 농사일에 아이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베푸는 것이 쉽지 않다. 도시처럼 아이들 교육에 신경 쓰는 부모도 많지 않다. 그러니 자연스레 성당에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첫해에 무조건 주일학교를 시작했다. 근처 학교 입구와 문방구에 포스터를 붙여 아이들을 유혹했다. 여름 방학 때 육지에 있는 놀이동산에 간다고 홍보했다. 놀랍게도 아이들이 60명 가까이 모였다. 다음 해엔 중등부 학생들을 모아 주일학교를 시작했다. 한 명 한 명 늘더니 스무 명이 됐다. 아이들과 함께 한라산과 제주도 유명 관광지, 오름 등반을 다녔다. 유채꽃밭에서 사진도 찍고 메밀꽃밭을 찾아 감탄하기도 했다. 스무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해수욕장에도 자주 갔다. 눈이 귀한 곳이라 겨울에는 한라산 자락에 올라 비료 포대 가지고 눈썰매도 신나게 탔다. 여름에는 서울에서 주일학교 베테랑 교사들을 불러 캠프도 했다. 사제관에서 떡볶이도 엄청 해 먹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참 많이 했다. 혁준이, 엄청 멋있어졌다, 난 우리 성당에서 진영이가 제일로 예쁘다, 현아와 소영이가 복사할 때면 아름다움에 눈이 부셔 미사 드리기가 힘들다, 승우 덕분에 교리반이 얼마나 밝아졌는지 모른다, 등등. 그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아이들을 안아주며 칭찬해줬다. 그랬더니 진영이는 진짜 자주 웃으며 고와졌고, 쌍둥이 유미와 유리는 참 듬직해졌다. 성당 나오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던 정효는 여자아이들에게 제일 멋진 친구가 됐다. 본당을 떠난다고 하니 아이들이 내게 편지를 줬다. "철없고 버릇없는 저희였지만 항상 웃으면서 얘기하시고 상냥하게 대해주시고, 장난쳐도 만날 재밌게 받아주시고, 오랜만에 나와도 거리감 없이 대해주시고, 신부님으로 인해 저희는 더욱 성장했습니다." 아, 눈물이 나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