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웅 신부(제주교구 서귀포본당 주임)
서울에서 제주로 파견돼 제주 서쪽 끝 신창본당에서 지낸지 딱 3년이 됐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새 임지(서귀포본당)로 가기 직전이다. 원래는 3년 임기를 마친 후 서울로 복귀해야 하지만 제주의 여러 사정과 주교님 배려로 제주에 3년 더 있게 됐다. 신창에는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여러 대 설치돼 있다. 이 지역이 바람이 많다는 이야기다. 일 년 내내 바람이 많은 곳이지만 특히 겨울바람은 감당하기 힘들다고 느낄 만큼 매섭다. 지난 연말부터 며칠 전까지 한 20여 일 간 쉴새 없이 눈보라 휘날렸던 때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사실 서울에 살면서 일기예보를 볼 때 제주도는 늘 영상 5도 이상이어서 제주에 살면 따뜻하게 살 줄 알았다. 실제 영하로 내려가는 날은 거의 없지만 겨울 북서풍이 불어 닥칠 때면 서울의 영하 15℃보다 더 춥게 느껴진다. 신창본당에 부임해 오던 그 겨울에도 바람과 눈보라가 몹시 심했다. 제주로 가는 배와 항공편이 결항돼 제 날짜에 부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었다. 제주에 오자마자 그 다음날부터 또 여러 날 그런 상황이었다. 문과 창문은 시도 때도 없이 들썩거려 그 소리에 적응하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성당에 가려면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그 중간에서 갑자기 모진 바람을 맞느라 난간을 잡고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고 몇 분 동안 서 있었던 적도 있었다. 또 눈보라가 너무 심해 신자들에게 연락해 미사를 취소할 테니 성당에 오지 말라고 한 적도 있었다.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하는 육지에 계신 분들께 이렇게 말하곤 했다. "돌덩이 세 개 넣어둔 배낭을 짊어져야만 밖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이 날아갈 지경입니다." 제주에서 생활한지 20일쯤 되는 어느 날, 80살을 넘긴 안셀모 할아버지께서 미사 끝나고 인사하면서 농담으로 내게 한 마디 건네셨다. "신부님, 다시 서울로 돌아갑서. 신부님이 추위와 바람을 다 몰고 왔수다." 그런 바람이 불던 며칠 전 신자 한 분께 어떻게 평생 이런 데서 살았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그런 줄 알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았수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제주 사람들은 겨울바람 뿐 아니라 굴곡진 시대의 온갖 풍상고초를 꿋꿋이 견디며 살아온 이들이다. 많은 아픔을 삭이며 살아온 그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말한다. "3년 살아보니 더 이상 아무 바람도 없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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