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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6·25 휴전 기념일

namsarang 2009. 7. 27. 21:22

[만물상]

미국의 '6·25 휴전 기념일

  • 김동섭 논설위원

 1951년 7월 10일 개성 선죽교 부근 내봉장(來鳳莊)이라는 99칸 한옥집에서 열린 6·25 휴전협상에서 유엔군과 북한은 신경전으로 일관했다. 북한 수석 대표 남일은 자기 의자를 유엔군 대표 의자보다 10㎝ 높게 만들고 탁자 위 국기 깃봉도 더 높게 달았다. 유엔대표단이 개성에 올 때도 지프에 백기를 달고 수행원들도 백색 완장을 차도록 했다. 유엔군이 항복했다고 선전하기 위해서였다.

▶한국군 대표 백선엽 소장은 회담 내내 인민군 대표들을 쏘아보며 기 싸움만 벌였다. 유엔군 수석대표만 발언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민군 대표 이상조 소장이 갑자기 백 소장에게 메모지를 꺼내 보였다. '상가(喪家)의 개만도 못한 미 제국주의자들의 노예'라며 백 소장의 침묵을 야유하는 메모였다. 이후 158차례 회담이 거듭된 끝에 양측은 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에 서명했다. 당시 유엔군 수석대표 클라크 사령관은 "항복을 받지 못한 첫 미군사령관이 됐다"고 자조했다.

미국 상·하원이 7월 27일을 6·25 참전용사를 기리는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성조기를 조기(弔旗)로 다는 '한국전 참전용사 인정법(Korean War Veterans Recognition Act)'을 통과시켰다. 그간 조기로 다는 기념일은 현충일이 유일했다. 아울러 6·25 휴전기념일은 미국 관공서 등에서 법적으로 국기를 공식 게양하는 19번째 기념일이 된다. 6·25전쟁에서 미군 5만4000여명이 전사하고 8000여명이 실종됐지만 2차대전과 베트남전에 끼여 미국에선 '잊혀진 전쟁'으로 불려 왔다.

▶이 법 제정에 앞장선 이는 27세의 한인 1·5세 여성 한나 김이다. 서울대로 유학을 왔던 그는 미국평화연구소에서 한국전 자료를 정리하는 일을 하면서 6·25에 관심을 뒀다고 한다. 민간단체 '리멤버 727'을 이끌고 하원의원들의 방을 돌며 법안 지지 서명을 받아냈다.

▶우리는 "전쟁의 참화를 잊지 말자"며 6·25 발발일을 기념해왔지만 휴전일은 통일을 이루지 못한 치욕적인 날이라며 외면했다. 6·25 참전용사로 휴전기념일 법안을 발의한 찰스 랭겔 하원의원은 "한국전쟁에서 자유를 지키려 애썼던 참전용사와 실종자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휴전을 며칠 앞둔 철원·화천 인근 금성지구 전투에서만 실종된 수천 국군포로가 돌아오지 못했고 500명쯤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 휴전일, 국군포로를 북에 방치하고 있는 우리가 새삼 부끄러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