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추석 산타클로스

namsarang 2009. 9. 11. 19:42

[사목일기]

추석 산타클로스


                                                                               박용식 신부(원주교구 횡성본당 주임)

   "신부님 어서 오세요, 예수님께서 오신다기에 아침부터 마당에 있는 잡초 뽑고 방 청소도 했어요."
 
 마당청소를 하던 할머니께서 우리를 반기셨다. 본당신부인 내가 가는 것을 '예수님께서 오신다'고 표현하셨던 것이다. 추석이나 명절이 돼도 찾아올 사람이 없어 몇 년 동안 쓸쓸하게 혼자 지내시던 마리아 할머니를 방문했더니 할머니는 나를 예수님처럼 환영하셨던 것이다.

 나는 추석 전날인 9월 24일 작은 선물 보따리를 들고 구역장과 함께 홀몸 어르신들을 찾아갔다. 구역장들을 통해서 파악된 홀몸 어르신이 무려 29명이나 됐다. 몇 년 전에는 명절 때 신자들에게서 받은 고기를 나 혼자 먹지 않고 홀몸 어르신들에게 전해드릴 수 있었는데 요즈음에는 선물로 들어오는 고기는 적고 홀몸 어르신들은 많아서 모자라는 고기를 정육점에서 더 사야 했다.

 이런 나의 뜻을 알게 된 안드레아씨가 소고기 12kg을 사 줬고 그래도 부족한 6kg을 더 샀다. 국거리용 소고기 600g으로는 무언가 부족한 것 같아서 사탕을 한 봉지씩 더 준비했다. 그래도 부족해 보였다. 마침 사제관에 선물로 들어온 과일 중에 포도와 배가 여러 상자 있어서 포도와 배를 한 개씩 넣어서 포장했더니 그럴듯한 선물보따리가 됐다.

 추석 전날 구역장과 레지오 단장과 신자 한 명과 함께 29명의 홀몸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작은 선물을 전달했다. 집집마다 흩어졌던 가족이 모여 왁자지껄하며 가족의 사랑을 나눌 때 아무도 찾아올 사람이 없어 쓸쓸하게 추석을 지내는 홀몸 어르신들을 찾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대부분 고마워하며 행복해 했다.

 그중에서 우리를 예수님 일행으로 반겨주신 마리아 할머니가 눈에 선하다. 할머니는 일찍이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행복한 결혼생활을 시작했지만 자식을 낳지 못해 소박맞으면서부터 파란만장한 인생이 시작됐다. 자식이 없어서 여자아이 두 명을 양녀로 키워 결혼까지 시켰건만 결혼 이후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락도 없다.

 할머니는 젊어서 번 돈을 몽땅 사기당해서 빼앗기고 방 한 칸 얻을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다가 몇 달 전 군청의 도움으로 낡은 농가를 하나 얻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몇 년 동안 찾아오는 사람 한 명도 없다가 추석 전날 본당 신부가 신자들과 함께 찾아갔으니 그 기쁨이 하늘을 찔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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