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까지 국내 조선소는 중소형 어선을 겨우 만들어내는 수준이었다. 세계 조선·해운업계에서 선박이 대형화되는 추세를 보이던 당시, 1만8000t급 팬 코리아호 건조를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대형 선박 생산 시대가 열렸다.
이 배는 곡물·광물 등을 나르는 화물선으로 범양상선(현 STX팬오션)이 1971년 1월 발주했다. 1972년 당시 소련의 대흉작으로 곡물 운임이 2배 가까이 폭등하면서 팬 코리아호는 운항 1년 만에 선박 건조비 이상의 돈을 벌어들였다.
- ▲ 국내에서 처음으로 완성된 1만t급 이상 대형 상선(商船) '팬 코리아호' 진수식.
한국 조선업계는 과감한 투자와 한국인 특유의 근면함, 획기적인 생산 방식 도입 등으로 2000년대 이후 확고한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한국 조선업계는 지난해 선박 수주량, 인도량, 수주잔량(주문을 받아놓은 일감) 등 3개 부문에서 6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세계 10대 조선소 가운데 7곳이 한국 업체다.
조선업은 세계 경기 침체기에 한국 경제의 버팀목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1월 무역 적자를 기록하며 위기감에 휩싸였던 우리나라는 2월 흑자(28억2000만달러)로 돌아서면서 힘을 내기 시작했다. 2월 전체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8.3% 줄었지만 선박 수출이 47.3% 늘어난 게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조선업은 지난해 단일 품목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수출 400억달러를 돌파(432억달러)하며 수출 품목 1위에 올랐다.
현대중공업의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설비)와 삼성중공업의 드릴십(수심이 깊거나 파도가 심한 해상에서 원유·가스를 시추하는 선박 형태 설비)은 대당 가격이 1조원이 넘는 고부가가치 품목으로, 기술이 뒤떨어지는 다른 나라에서는 흉내조차 못 내고 있다. 조용준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은 IT 기술을 활용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기 때문에 중국도 쉽게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