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해마다 벼베기 행사에 참여, 쌀 증산을 독려했다.
당장 먹을 쌀도 부족할 때, 묵은 쌀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통일벼'다. 1971년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통일벼의 위력은 대단했다. 보통 벼는 이삭 하나에 낱알이 80~90개였지만 통일벼는 120~130개가 보통이었다. 많을 때는 200~300개가 달리기도 했다.
통일벼의 보급은 1974년 쌀 생산량 3000만석 돌파, 1975년 쌀 자급(自給) 달성, 1977년 4000만석 생산 돌파 등 신기록 행진을 가능하게 했다. 공식적으로는 1949년 고시·배달·새나라·만승 등 4개 벼 품종이 광복 후 가장 처음으로 품종등록 됐지만, 쌀 막걸리 부활을 가능하게 했던 통일벼가 '대한민국 1호' 쌀 품종으로 손색이 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해마다 벼베기 행사에 참여, 쌀 증산을 독려했다.
통일벼가 국민을 배부르게 했지만, 오래지 않아 쌀 소비가 문제로 부각됐다. 1979년 135.6㎏이었던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0년 후인 1989년 121.4㎏로 떨어졌다. 이에 맞춰 1989년 삼양식품에서 출시한 것이 '대한민국 1호' 쌀라면이다.
2007년 6월 국세청 기술연구소는 '쌀 맥주(麥酒)'를 처음 개발해 국가특허로 등록했다. 100% 쌀이 원료라서 '미주(米酒)'라고 부르는 게 더 적당할 수 있다. 쌀 맥주까지 개발된 것은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75.8㎏(2008년)까지 떨어져 쌀이 남아도는 탓이다. 30년 전과 비교해 쌀을 절반가량만 먹게 된 시대라서, 앞으로도 쌀로 만든 '대한민국 1호'가 계속 탄생할 전망이다.